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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포도뮤지엄 - 생각보다 주제의식이 깊어 놀랐던 전시

본태박물관에서 알차게 전시를 보고, 근처 포도뮤지엄으로 아주 힘겹게 이동했습니다. 걸어서 말이죠.😅

땡볕에서 40분을 걸어온 터라 이미 녹초가 될 때쯤 발견한 포도뮤지엄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서둘러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 포도뮤지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88 포도뮤지엄

수 - 월 10시 -18시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https://www.podomuseum.com/

064-794-5115

관람료는 성인(19세 이상) 10,000원, 청소년(만 13세-18세) 6,000원, 어린이(만 12세 이하) 4,000원이였구요. 제주도민은 50% 할인되더라구요. 그리고 국가유공자, 장애인, 36개월 미만은 무료라고 홈페이지에 적혀있는데요.

 

사실 제가 갈 당시에는 관람료가 더 저렴했어요.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12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였는데요. 그 사이에 가격이 인상된건지 아니면 전시에 따라 금액이 변경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가실 때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5,000원도 저렴한 편이였는데, 갔던 당일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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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끊으면 포도뮤지엄 모양의 동그란 보라색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그리고 큐알코드로 오디오 도슨트도 무료로 들을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오디오는 안 좋아하는 편이라 패쓰~했습니다.😉


1층 전시

무료긴 하지만 티켓을 끊고 드디어 입장을 합니다. 제가 본 전시는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제주展>이였어요. 상설 전시라 어느 정도 기간마다 진행되고 계속 바뀌는 것 같더라구요.

초반부터 강렬한 전시들이 눈에 띄었어요. 제목과 달리 생각보다 주제가 굉장히 심오하더라구요. 주제는 여러 사회속에서 드러나고 표현되는 혐오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소문의 벽>으로, 벽 사이로 난 작은 동그란 구멍 가까이 들여다 보면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혐오 문구가 가득했어요. 읽으면서 괜시리 섬뜩하더라구요.

 

'내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은 들을 수 없으니 피해가 가지 않겠지.'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우리를 위해서는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지.'

 

이러한 글귀들은 흔히 나누던 가벼운 뒷담화에 시작하여 대중매체 혹은 권력 집단까지 발화했던 실제 가짜 뉴스와 소문들이라고 해요. 누군가의 한 마리도 이렇게 무섭게 번지는 양상이 참 끔찍했습니다.

 

사실 언어는 다르지만 혐오를 하는 대상들을 향한 패턴은 비슷하더라구요. 그저 우리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목하게 무조건적으로 근거없이 전염병, 게으름, 비윤리적, 위험한 존재로 매도하고 있었습니다.

 

심플해보이는 이 전시물은 사실 구멍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형태로 제작한 이유는 사실 우리가 남들을 훔쳐보는 관음증같은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들여다본 글자들의 형태는 왜곡되어 과장되어 있죠.

다음 전시관에서는 연필로 다양한 필력으로 표현해낸 사람들의 얼굴드로잉이 한 벽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을 표현한 것인데요. 

 

한 명, 한 명 모두 개인이지만, 멀리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저 수많은 군중속 익명의 사람들일 뿐이였죠.

벽 사이마다 작은 창이 나 있는데, 바깥 풍경이 마치 그림같고 너무 이쁘더라구요. 보면서 저 정원 나가보고싶다 생각이 여러번 들었는데, 아쉽게도 못 나가봤어요.(어딘지 모름😥)

<비뚤어진 공감>으로 들어가면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글자가 있고, 그 위로 걸어갈 때마다 사람 모양이 글자들로 만들어지는데, 무척 재밌더라구요.

하지만 나오는 글자들은 전혀 재밌지 않았다는 거. 혐오 문장들이 가득해서 읽으면서 걸으니 진짜 섬뜩하더라구요. 옆에 <패닉부스>라고 영상관이 있는데요.

 

전 세계의 혐오와 전쟁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의 연달아 나와서 보면서 굉장히 무섭고 우울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의 입장은 권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가 있더라구요.

들어서자마자 이미 시각적인 아우라가 장악했던 전시관. 혐오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퍼뜨리는 사람과, 결국 그러한 혐오가 누군가를 낭떠러지로 이끄는 듯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더라구요.

한쪽에 비춘 그림자가 굉장히 기괴하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앞쪽에 다양한 서랍들이 있었는데요. 그곳에는 이렇게 오래된 사진들이 가득 붙여있었어요. 

행복해 보이는 부부, 그리고 아이들, 가족사진. 그 뒤로는 아주 끔찍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단계별로 이어진 혐오의 피라미드부터, 그러한 혐오와 차별로 인해 전 세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이 쓰여져 있었어요.

 

편견, 혐오표현, 차별, 폭력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행동입니다.

편견의 발현이 표현인지 폭력인지로 갈릴 뿐,

그 원인과 배경은 동일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요?

 

홀로코스트, 르완다 내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등과 최근 코로나로 인한 아시아인 혐오까지.

 

오랜 시간 끊임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누군가를 저격한 혐오는 아주 비극적인 역사를 남겼는데요. 이러한 역사가 현재에도 계속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참혹하더라구요.😨

초반부터 너무 끔찍했던 전시들을 지나니 다행스럽게도 희망과 위안을 주는 장소가 나왔습니다. <숙고의 방>으로 혐오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있었어요.

그곳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부터 넬슨 만델라, 테레사 수녀 등 전 세계의 멋진 위인들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책모양의 조명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웠지만, 그들의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내포하는 듯해서 더욱 빛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피부 색깔이나 가정 환경, 족교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넬슨 만델라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그의 모습에 비친

우리 안의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절대로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

 

아무리 혐오와 끔찍함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여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 라고 마치 그들이 외치는 것 같았어요.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 하다.

-정혜신

 

마지막으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듯한 여러 나라의 기도하는 손 조형물로 전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부디 하루빨리 혐오를 없애고,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전시를 나오니 이렇게 미니 도서관이 있었어요. 전시와 관련한 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 중에 '가짜뉴스의 고고학'이 눈에 띄네요. 1층 전시를 보고, 이제 2층으로 올라갑니다.


2층 전시

2층에서는 <케테 콜비츠, 아가, 봄이 왔다> 전시를 따로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이곳에서도 큐알코드로 오디오 도슨트를 이용할 수 있더라구요. 목소리는 무려 유태오 배우였어요.(들을껄...)

 

케테 콜비츠는 독일의 예술가로 그림, 조각도 했지만, 대부분 판화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입니다. 타이틀 제목의 유례는 안타깝게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아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라고 해요.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손자도 잃는 고통도 겪었다고 합니다.😭 아들과 손자를 잃은 아픔이 작품에 반영되었는지 아이와 엄마를 함께 그린 작품이 많더라구요.

파트1은 <오랜 독백>으로 예술가이자 여성, 그리고 두 아이의 어머니인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묘사한 자화상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이 듦은 청춘의 나머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상태이다.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위대한 상태이다.

내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 발전이라는 의미에서 나이 듦이었다.

영원히 타오르는 촛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자화상은 일기, 편지와 마찬가지로 자전적 기록의 한 형태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이였다고 하는데요. 전 생에게 거쳐 100여 점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자화상은 여성성을 전혀 과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내면을 진실하고 가감없이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굉장히 솔직하게 얼굴과 신체를 묘사한 것을 볼수 있어요.

 

두번째 파트2는 <세상에 건내는 위로>로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등장하는 작품들을 통해 작가만의 따뜻하고 포근한 모성에 대한 시선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두고 죽음과 싸우는 여인

파트 3는 <총칼의 파국>으로 세계대전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뒤 그녀의 작품세계는 전쟁의 참상과 반전을 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들

전시장에는 총 7점의 <전쟁>연작 작품이 있었는데요.

 

"너는 '돌아올게요.라고 말했었지.

네 침대 위에 있던 시든 잎들을 거두고, 네 유품들을 천으로 덮었다.

하얀 천 위에 흰 자작나무들이 놓여 있구나.

네 침대 옆에... 아가, 봄이 왔다."

 

나치당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가지 전쟁의 야만성을 반대하고 대항하면서 이러한 비극과 절규의 모습을 반전 소재로 삼아 1922년부터 1925년에 걸쳐 연작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죽음, 여인 그리고 아이

파트 4는 <죽음과의 조우>로 남동생, 아들, 손자 그리고 남편의 죽음까지 겪은 케테 콜비츠의 인생에서 죽음을 떼어낼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과 여인

평생 죽음과 대화했다고 말할 만큼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주제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이별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항상 그녀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직조공의 행진

마지막 파트 5는 <억압 속의 외침>인데요. 일찍이 노동자들에게 매료되었던 그녀는 베를린 빈민지역에 살면서 그들의 가난과 비극적 참상을 꾸준히 작품속에 담았습니다. 

 

"나는 목적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

구제받을 길 없는 약자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자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

 

그리고 하웁트만의 연극<직조공들>을 관람 후 큰 영감을 받아 총 6점의 <직조공 봉기>연작을 제작하게 되는데요. 이후 이 작품의 그녀의 대표 연작 중 하나가 됩니다. 

정문 기습

그녀는 꾸준히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담아 작품을 만들면서, 사회구조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예술적 실천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전시는 5개의 파트로 이루어졌는데요. 전체적으로 시대상황이 암울했던 만큼 굉장히 무거운 주제들이 담겨있었는데요. 하지만 그 무겁고 비극적인 상황속에서도 은연중 내보이는 희망의 메세지가 느껴져서 찡하더라구요.

 

단순히 시각적이고 아름다운 예술로의 그림이 아니라 사회적인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는 묵직한 미술을 보고 나니, 예술의 본연적인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카페 & 기프트샵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그제서야 입구에 있던 카페가 보이더라구요. 앞에 이쁜 유리창문도 있어서 사진찍기도 너무 좋겠더라구요.(많이들 이곳에서 찍으시는 듯😉)

카페 메뉴는 굉장히 심플했습니다. 옆에 간단한 쿠키같은 디저트도 팔더라구요.

그리고 한쪽에 아주 소박하게 기념품과 도록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전시중인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도 판매하고 있더라구요. 생각보다 굿즈양은 많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심플한 디자인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아쉽게도 포도호텔은 보지 못했지만, 우연히 가게된 포도뮤지엄은 생각보다 전시 구성도 깔끔하고 주제의 깊이도 깊어서 덕분에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저는 귀찮아서 오디오가이드를 듣진 않았지만, 막상 관람하고 나니 이해가 완전히 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어요. 이왕이면 오디오 가이드 들으실 것을 추천드려봅니다.😅

 

제주도 본태박물관 - 알찬 전시와 아름다운 건축물의 조화

 

개관 1주년이라니,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뮤지엄인데요. 왜 포도뮤지엄인가 하니, 근처 포도호텔과 브랜드 연계를 위해 비슷하게 붙여졌다고 하네요.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는 구조에서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색다른 문화적 체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건축의도도 굉장히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제주도 뚜벅이 보름살기 13일차 (방주교회, 본태박물관, 포도뮤지엄 버스타고 걸어가기)

 

사실 위치가 조금 애매하기 때문에 일부러 오기보다는 혹여 주변에 들르신다면 한 번쯤 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구요.

 

왠지 지금의 전시 퀄리티로 봐선, 앞으로도 좀 더 차별화되는 이색 전시가 많이 펼쳐질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 뮤지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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