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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 - 지독한 현실 속에서 그려낸 따뜻한 환상(스포O)

우연히 본 예고편에서 구교환 배우의 "돌아왔구나."라는 독특한 보이스에 반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 제인 역을 연기한 구교환 배우의 매력에 빠져 이어서 그의 다른 작품인 <메기>도 보게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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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이고 몽환적인 포스터마저도 제인스럽달까. 너무 아름다워서 소장하고 싶어지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포스터와는 달리 전혀 아름다운 내용을 그리고 있진 않습니다. 

 

지극히 지독하고도 잔인한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할까요. 생각보다 더욱 무거운 이야기에 보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제인' 덕분이었죠.

꿈의 제인

2016   한국  104분  조현훈 감독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독립영화에서 주목하고 있는 구교환 배우는 또 다른 작품 <메기>에서 이주영 배우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데요. 연인으로 나왔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엄마와 딸같은 관계로 설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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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에서 연인의 모습으로 익숙했음에도 불구하고, 구교환 배우가 워낙 찰떡같인 따뜻하고 살가운 엄마의 모습인 제인을 잘 연기해서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사실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지만, 조금 과장되거나 어색한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때는 영화적 몰입도가 떨어져버리는데요.

 

구교환 배우는 전혀 과장되지 않게 자연스러운 제인의 모습을 너무 잘 소화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짜 제인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배우의 기존 이미지는 싹 지워버리고, 제인의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죠.

제인 다음으로는 사실상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소연역은 이민지 배우가 맡았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의 절친 장미옥으로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애정이 필요한 다소 우울한 가출청소년 소연역을 연기하여 전혀 다른 이미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민하고 불안정한 위기의 놓인 청소년의 모습을 너무 잘 연기해서, 그 역할에 진심으로 빠져들어 보게되더라구요.

 

원래 연기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흡입력이 있는 배우인지는 몰랐는데요. 앞으로 연기하시는 다른 작품들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영화는  담담하게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소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가출 청소년 소연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매일 애를 씁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주었던 정호 오빠는 모텔방에 자신을 홀로 두고 떠나버리고, 이후 들어간 팸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합니다. 

 

팸의 리더이자 일명 아빠라고 불리는 인간은 말도안되는 조건과 신고식으로 소연을 괴롭힙니다. 이후 새 멤버로 지수가 들어오며 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몰래 알바를 하며 돈을 벌던 지수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팸에 속하지 않는 듯한 독립적인 지수의 모습이 리더의 눈에 거슬리게 되고, 리더는 소연에게 했던 똑같은 신고식(돈이 빈다면서 폭력을 행사하는)을 진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소연과 나가겠다 선언하는 지수에게 화가난 팸은 지수를 가두어버리고 위험한 일을 시킵니다. 결국 절망에 빠진 지수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또 다시 혼자가 된 소현은 정호 오빠가 자신을 버렸던 모텔로 가 자살시도를 합니다. 앞이 몽롱해지려는 그때 그녀의 눈 앞에 제인이 나타납니다. "안녕? 돌아왔구나. 얘, 너 피나."

영화는 순차적인 구성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꿈의 제인>인가 싶었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 절로 끄덕이게 되죠.

 

이야기는 3(꿈)-2(현실)-1(과거) 역순하는 듯한 내용이지 사실상 맨 앞부분은 소현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우에게 버림받고, 팸에서조차 속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지수는 죽고, 그들의 친구들에게 조차 차가운 외면을 받은 소현은 결국 노력했으나 또 따시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함부로 하는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차도 함께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어리고 불안정한 청소년 소연에게 세상은 더욱 차갑기만 한데요. 하지만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척 묵묵히 걸어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향한 길은 바로 죽음이였죠. 사실 다시 돌아간 모텔에서 그녀가 누군간에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글을 쓴건지 아니면, 가슴아프게도 홀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그녀의 환상이 시작되었거든요. 어쩌면 환상의 시작이 누군가 한명이라도 자신을 구해주러 오길 바라는 소망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독하게 아픈 현실을 그린 영화를 그나마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명 제인이라는 인물때문이였는데요. 제인은 완벽하지도 마냥 따뜻한 인물도 아닙니다.

 

본인 또한 트랜스젠더로 남들에게 외면받으며 살아왔으며, 남의 물건은 으리슬쩍 집어오고,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팩폭을 날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돈을 버는 건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하며,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살뜰히 보호합니다. 책임을 회피하기 보다 오히려 짊어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죠.

 

사실 어찌보면 제인이 아이들을 돌보는 형태도 일종의 팸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이상적인 팸을 꿈꾸던 소연의 환상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해주는 제인의 팸안에는 지수와 그녀의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같은 환상들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만들더라구요. 

"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들과 같이 즐거운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 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오래오래 불행하게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영화 속 현실은 매우 무거웠으나, 제인 덕분에 따뜻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오히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현실과 환상 때문에 더욱 임팩트있게 묵직한 감동을 주었달까요.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