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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10권 읽기 버킷리스트 세번째 소설은 바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인데요. 항상 소설칸에 이쁜 표지에 감성적인 제목의 이 책이 빠지지 않고 놓여있어서 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읽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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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소개

첫 소설로 읽은 책 <종이동물원>도 SF장르의 단편소설이였는데요. 이 책과 동일한 SF장르이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느낌이더라구요. 살짝 연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뭐랄까 감성이나 이야기 전개가 전혀 다른 노선인 듯한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SF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다고 말씀드렸지만, 이 책은 종이동물원과 달리 잔인한 부분이 없고 좀 더 감성적이고 노멀해서 읽기가 편하고 재밌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더 호였습니다.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책표지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으로 MZ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요. 신기하게도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라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소설에서 굉장히 전문적인 과학적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전공자의 탄탄한 지식으로 잘 버무러져 그런지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있더라구요. 작가는 평소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고, 환상적인 시공간을 여행하거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고 하네요. 그런 호기심과 관심 덕분에 이런 이야기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단편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는데요. 최근에도 신간이 나올 정도로 활발히 저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7가지의 단편이 담겨있으며, 책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단편들 중 한편의 제목입니다. 그럼 간단하게 단편들의 줄거리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엘리트 과학자였으나 유전병으로 인한 얼굴의 흉터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릴리는 바이오해커가 되어 인간을 아름답고 질병없고 수명도 긴 '신인류'를 만들어 유토피아를 만들 계획을 갖습니다. 하지만 인간배아 디자인으로 완벽해진 개조인과 달리 그렇지 않은 비개조인 사이의 차별과 위계질서가 심각해지자, 그녀는 결함이 있는 아이들만 구성하여 차별이 없는 지구 밖 마을을 건설합니다.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적 있어?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들은 성년이 되면 지구로 순례길을 떠나게 되는데, 일부 사람들은 순례길에서 돌아오지 않고 지구에 머무르는 선택을 합니다. 이에 궁금증이 생긴 데이지가 그에 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스펙트럼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되었다가 구조된 생물학자 희진의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실종이 된 40년 동안 태양의 밖의 한 행성에서 최초로 외계 지성 생명체를 발견했고, 그들과 함께 지내며 생활한 신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행성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그녀의 말을 사람들은 거짓말이라 믿어주지 않고, 오로지 손녀만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점차 놀라운 지성 생명체의 실체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루이의 선량함을 생각할 때면, 나는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작고 단절된 마을을 상상한다. 할머니는 무력하고 유약한 이방인이었기에 환대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고작해야 그들의 어린 개체만 한 몸집에 그들을 해칠 만한 어떤 힘도 무기도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실제로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던 외계 지성 새명체 루이의 따뜻하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희진에 대한 책임감 넘치는 헌신이 무척이나 감동적인 느김이였어요. 과연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도 아니고 전혀 다른 종족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공생 가설

모스크바 보육원에서 자란 루드밀라 마르코프는 자신이 이곳에 왔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고향인 아름다운 행성을 그림을 5살때부터 그려내기 시작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진실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류드밀라가 그린 행성을 사랑하고 열광하게 되죠. 그리고 이후 류드밀라가 말했던 행성이 발견되면서 라마들의 관심과 논의는 더욱 증폭됩니다. 한편 뇌 해석 연구를 하는 수빈과 한나는 뇌의 생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신생아의 뇌를 분석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발상 덕분에 끝까지 흥미롭게 읽은 단편이에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목만 보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너의 이름>같은 시공간을 넘어서는 설레는 로맨스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였어요. 어찌보면 로맨스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맞긴 합니다. 이 단편은 우주 행성 이동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라는 행성에 가기 위해 이미 운행하지 않는 우주정류장에 홀로 우주선을 기다리는 170세 노인 안나의 이야기인데요.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주의 극적인 발전을 이룬 과학자가 경제적 효율을 따지는 세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가족과 단절되어버린 이 비극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요. 끝까지 헌신한 대가가 이런거라니. 정말 끔찍한 것 같아요. 

 

 

 

감정의 물성

행복, 침착, 공포, 우울 등의 감정을 조형화한 '감정의 물성'이라는 제품이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게 됩니다. 구매하는 감정에 따라 제품을 사용하면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묘한 장치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금세 빠져듭니다. 에디터인 정하는 이 제품을 상술이거나 유사과학이라 치부하며 부정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인도 이 같은 물건에 빠진 것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그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건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 또한 잘 팔린다는 것. 도대체 이들은 왜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걸까. 정하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관내분실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한 '마인드'를 수집하는 도서관에서 지민의 돌아가신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고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요. 곧 엄마가 될 예정인 지민은 과거 자신에게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엄마와 큰 갈등을 겪고 서로 단절된 채 살아왔는데요.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를 찾아보기 싫은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그녀지만 점차 마인드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가 궁금해지고,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48세의 동양인 비혼모로 온갖 차별속에서 꿋꿋히 자신의 실력으로 우주비행사에 선발된 최재경이라는 인물은 프로젝트 사고로 죽은 줄 알았으나 사실은 시작 전 바다 심해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녀를 동경해 똑같이 우주비행사가 되어 프로젝트를 앞둔 가윤은 이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단편집의 장점은 아무래도 읽고 싶은 편을 골라 읽을 수 있거나 재미없는 건 건너뛰어도 덜 마음적 불편함이 인다는 것인데요. 앞서 <종이동물원>의 경우는 후반부가 너무 재미없어서 중도포기할 뻔했지만, 이 책들의 단편은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혀서 좋았어요. 

 

 

 

다양한 현실을 SF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소설

단순히 미래적인 SF적 상상력이 담긴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미래에도 충분히 있을 듯한 차별을 담고 있는데요. 장애인, 비혼모, 인종, 여성, 소외 등의 현실 속의 다양하게 벌어지는 차별들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고 있어서 미래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동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분명 미래가 엄청나게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속의 인물들처럼 누군가는 경제적인 효율성을 따지는 정책으로 큰 피해나 비극을 맞이할 것이고, 어떤 일은 해나가는 데 있어 능력이 아닌 외적인 부분들로 차별이 가해질테니 말이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양장본 HardCover)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에서 이제는 소설을 쓰는 작가 김초엽.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세계를 특유의 분위기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해온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관내분실》로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신인소설가로서는 드물게 등단 일 년여 만에 《현대문학》, 《문학3》, 《에피》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펴낸 첫 소설집으로, 근사한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저자
김초엽
출판
허블
출판일
2019.06.24

 

그런데 이 같은 불편한 일들을 작가는 그저 독자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담담하게 극적이지 않고 서정적인 어투로 전달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도 없었지만, 다소 이질적인 상황들이 너무 어렵거나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충분한 설득력으로 이야기를 조용하지만 힘있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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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왜 이렇게 많은 호평과 인기를 얻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보고나니 최근 신간과 더불어 작가님의 다음 작품들도 보고싶어지네요.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정적인 정서의 SF장르를 좋아하신다면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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