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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이끌려 보게 된 책. 앞서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등 여러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표지가 눈길을 끌었는데 알고보니 반지수 작가의 작품이었다. 익히 이름과 그림 몇 장만 알고 있었던 작가의 지망생 시절을 담은 신간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을 들었다.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책리뷰
검색하다 알게 된 또 다른 반지수 작가의 책 <반지수의 책그림>과 함께 독서를 가볍게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이 책을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 가벼운 에세이 형식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생각해보니 꽤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고,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보니 차곡차곡 천천히 읽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출판년도 : 2024
출판사 : 송송책방
저자 : 반지수
마치 글 귀 하나하나 새겨읽은 듯한 느낌. 물론 읽으면서 다소 반복되는 메세지나 문구가 많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했던 시간들의 축적들이 꽤나 묵직하게 담겨있어서 꿈을 꾸는 이들이라면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이 충분히 공감될 만할 것 같았다.
고민 많고 갈팡질팡하던 지망생 시절 이야기
지망생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현업에 직업적으로 반듯하게 자리잡은 이들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비록 그 고민과 과정이 남들과 똑같이 힘들과 다사다난하다고 할지라도 일단 해당 저자는 그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산의 문턱을 오른 셈이니까.
사실 유명 작가들의 지망생 시절 이야기들을 보면 크게 우리와 다르지 않고 생각보다 힘든 과정을 거친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저자의 경우 비전공에 독학으로 해나가야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전제가 어찌보면 더욱 일반 대중에게 공감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힘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수 작가도 또한 많은 비전공 지망생들처럼 과연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막막함이 가득했던 시절을 담담하게 책 속에 풀어놓았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다시 딛고 일어서는 과정들을 보면서 마치 내가 겪는 듯한 답답함이 들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엄지척이 들리기도 했다.
운과 기회를 잡을 용기의 필요성
하지만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괴장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기회가 주어졌고 그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상황이 착착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냥 주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꾸준히 노력하면서 자신을 알려왔을 것이고, 기회가 왔을 때에도 주저하지 않고 덜컥 잡았던 것이 지금의 결과에 이르게 한 한걸음들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들마다 성격이나 취향이 제각각이지만 반지수의 작가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홀로 하는 작업보다 협업을 중시한다는 점이였는데, 물론 혼자 하는 작업도 잘 맞는다고는 했지만.
그런 협업하는 자세와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임하는 성격이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성장하는데에 큰 보탬이 되었던 것 같다. 보통 예술가라고 하면 감성적이고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상업적인 감각이나 측면이 약한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이다.
그에 반면 저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탐색하고 계획하고 시도하는 데에 꽤나 주저함이 없다. 물론 그림을 시작해야하기까지 고민 과정이 길었지만, 결정하고 나면 바로 직진하는 듯한 스타일이랄까. 이런 점은 참으로 배워야할 점이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 한참을 끄덕끄덕.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 중에 다른 직종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아마 이런 분석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 책을 읽으면서 성향과 취향 그리고 현실적인 점까지 차곡차곡 분석해나가는 부분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와는 전혀 다른 결이라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달까.
비전공자가 베스트셀러 표지 작가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면
에세이치고는 300p 넘는 분량에 글귀도 꽉 차서 오랜만에 독서다운 독서를 했던 것 같다. 종종 가벼운 에세이들 중 내용이 별로 없거나 한없이 가볍기만 해서 남는 것이 없어 아쉬울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자전적인 일기에 가까운 내용이라 더욱 읽을 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반지수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반가울 만한 이야기고, 저자를 잘 모르더라도 예술가를 지망하거나 다른 꿈을 열심히 쫒고 계신 분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이 될 만한 책인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어렵거나 무겁진 않지만 꽤나 분량이 많고, 묵직해서 천천히 틈날 때마다 읽기 좋은 것 같다. 무거운 독서는 부담되고, 그렇다고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읽어보시길.
기억에 남는 글귀들
내가 하고 있는 방식에 의문이 생기면 그만둔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이 불편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내가 끈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나의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굳이 그것을 물로 늘어질 필요가 없다. 마음이 가는 방식으로 그리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다.
내가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일단 그것을 그려보아야 한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세상의 전체 이익에 도움 되지 않는 무의미한 그림은 그리면 안 돼.', '여성 외모를 한 가지로 판단하는 그림은 그리면 안 돼.'와 가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나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을 멸시하고, 무시했다.
예술과 사상의 만남은 경이로운 것이지만, 예술에 항상 사상의 기준을 들이대느라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가로막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다. 그것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일단 그려야 한다.
-p.325
많이 그린다고 잘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 그릴 것 같은 정도의 어려운 것을 계속 많이 그릴 때 실력이 늘어난다. 그림 그리기에는 '제한'이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장에 그리면 된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이상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림 그릴 기회와 '종이의 수'는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언제나 다음이 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은 다음 그리에서 기대해도 좋다. 당장 눈앞의 종이를 걸작으로 만들고 싶은 강박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
-p.328
'쉽다, 어렵다'는 사실은 '어색하다, 익숙하다'의 다른 말이다. 멋진 요리의 레시피를 통달하고 있어도, 단 한 번도 칼질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칼을 든 첫날 멋지게 채썰기를 해낼 리가 없다. 그 행위가 처음이라서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질을 하면 할수록 금세 채썰기를 멋지게 해낸다. 이제는 그 행위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악기, 젓가락질, 자전거 타기 등 많은 행위들이 처음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색한 것이다.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들은 재능이 아니라 단지 나보다 '더 일찍 시작'하여 '익숙'해진 사람들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대단한 작가들도 처음엔 엉터리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어색함과 익숙함의 문제는, 복잡한 부분은 빼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간'의 문제다. 그래서 계속 그려보는 게 중요하다. 점점 익숙해지기 위해서.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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