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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을 먼저 보고 이어서 다음 만화 <선생님의 가방>을 연달아 읽었다. 정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제쳐둔 채 가벼운 마음으로 단편들을 계속 보고 있는게 참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음식 이야기를 별로 흥미로워하지 않음에도 불구, 이러다간 결국 <고독한 미식가>도 자연스럽게 완독하게 되지 않을까. 다만 권수가 많아서 살짝 고민스럽긴 하다.
선생님의 가방 책소개
<선생님의 가방>은 총 2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마치 연극의 극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처럼 책 1권과 2권의 분위기와 전개가 사뭇 달라서 흥미로웠다. 원작은 동명의 일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저명한 상도 받고 일본에서 꽤 많이 읽혔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딱히 인지도가 높은 것 같진 않다.
출판년도 : 2014
출판사 : 세미콜론
저자 : 다니구치 지로, 가와카미 히로미
스펙타클하고 몰입도 높은 이야기 전개를 좋아하는 국내 만화 시장의 경우 아무래도 이런 잔잔한 장르는 취향을 탈 수 밖에 없을 것 같을 듯. 사실 나 또한 그런 장르적인 만화를 더욱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가끔씩은 굉장히 깊은 작품성이 느껴지는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는데 의외의 감동을 안겨줄 때 은근한 기쁨이 있다. 그래서 종종 찾아보는 듯.
연출이 굉장히 섬세하고 잔잔한 전개로 이루어지다보니 확실히 만화치고는 진도가 막 나가진 않았다. 그냥 천천히 책의 호흡처럼 느리게 읽어나간 것 같다. 무엇보다 다니구치 지로의 드로잉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보니 세세한 배경과 인물의 묘사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는 이미 <산책>에서 충분히 느꼈던 장점.
예상치 못했던 로맨스 전개
<선생님의 가방>은 37살의 여주인공 쓰키코가 늘 가던 동네 선술집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국어를 담당했던 마쓰모코 하루쓰나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 뒤부터 그냥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두 사람은 우연히 단골 선술집에서 만나면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많은 대화들을 나누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매우 잔잔하게 다루고 있다.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해서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로맨스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약간 이상한 포인트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2권에서 급 두 사람이 이어지는 전개로 가서 사뭇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그저 오랜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가 술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인 줄 알았기 때문.
그런데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니 은근 미묘한 연애 감정들이 다시금 느껴지긴 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두 사람이 연인이 될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고 봤을지도. 뭔가 읽으면서 삼십대의 독신 여성과 육십 대의 사별한 노신사의 로맨스가 다소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으로 느껴져서 어색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30살 차이의 커플이 드물긴 해도 현실에서 전혀 없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상할 건 없는 것 같다. 뭐 할리우드만 봐도 장난 아니긴 해서. 심지어 두 사람은 성인이고 사별이긴 하지만 독신이기 때문에 서로가 좋다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남녀 관계일 뿐이다. 미성년자이거나 기혼자가 아니라면 문제될 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전개 방식이나 정서가 조금 낯설긴 했다. 뭔가 일본 특유의 느낌이랄까. 말로 설명하긴 뭐한데 확실히 일본은 같은 동아시아임에도 불구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문화적 감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반부에는 살짝 불호가 일 뻔했는데, 다 읽고 나니 또 은근 여운이 짙어서 한참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묘한 작품이다.
끝을 예상하고 펼쳐지는 쓸쓸한 사랑 이야기
다 읽고 나니 마지막 즈음에는 두 사람의 로맨스가 애틋하면서도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물리적으로 노신사의 남은 삶이 쓰키코와 함께 할만큼 충분하긴 어려울 것이고, 두 사람은 곧 이별을 앞둔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헤어짐이 아닌 죽음으로서의 이별은 참으로 슬프다 못해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키코는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을 통해 고독했던 독신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따뜻한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귀한 인연과 함께했던 순간의 추억들은 평생 기억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참으로 갚진 일이구나 다시금 느끼게 되는 마지막이었다. 생각지 못한 나의 편견을 느끼게 해준 <선생님의 가방>. 생각해보면 단순한 나의 시각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전작 <산책>이 워낙 잔잔하고 큰 사건사고없는 스토리였던 탓도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니 왠지 이번에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 아무래도 소설이 원작이니만큼 완결적인 스토리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산책>이 더 취향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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