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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노 후미코의 책들 중 가장 취향저격이었던 작품 <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 앞서 조금 난해한 면모와 난이도 있었던 다른 그녀의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짧은 컷만화 형식으라 굉장히 가볍고 유쾌해서 틈틈히 읽기 너무 좋았다. 이런 스타일도 잘 그리는구나 싶어서 읽으면서 역시나 작가의 역량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 서평
제목이 굉장히 독특하고 긴데, 사실 원제는 주인공 이름인 '루키 씨'라고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서 좀 더 튀는 제목으로 바꾼 듯 하다. 이 작품은 1980~90년대 일본의 여성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코>라는 잡지에 매월 연재되었다고 한다. 무려 30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불구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하니 당시에도 꽤나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출판년도 : 2019
출판사 : (주)이봄
저자 : 타카노 후미코
만화에서는 30대 중반인 루키와 엣짱이 등장하는데, 둘은 이웃 사촌이자 친구사이이다. 루키의 업무가 굉장히 독특한데 병원 원무가에서 일을 받아서 보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계산해주는 일을 한다. 현재는 전산화로 인해 이미 사라진 업무인데, 아마도 저자의 간호사 이력이 이러한 독특한 직업을 주인공에게 부여해주게 되지 않았나 싶다.
특별하지 않은 평온한 그녀들의 일상
펼친 페이지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초단편 형식의 이 만화는 엄청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진 않다. 마치 하루 하루 미묘하게 달라지는 일상처럼 아주 평온하고 소소한 재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그녀들의 이야기가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루키라는 인물이 먼저 등장하는데, 그녀는 보통의 만화 주인공과는 다르게 한없이 평온하고 크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치 어느 경지에 오른 도인같달까. 가끔은 본능에 충실해 이상한 행동도 아주 서슴치 않게 해서 친구 엣짱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의 매력.
8~90년대라는 배경 설정을 모르고 봤다면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 없을 만큼 세련된 연출과 흥미로운 전개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그럴만한 게 사실 루키 짱의 업무부터가 당시치고는 완전 파격적이다. 지금도 낯선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
아마도 생활에 최소한 돈벌이만 하고 시간에 속박되지 않길 원하는 그녀의 성향 덕분인 듯 한데, 그렇게 얻어진 시간 속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고 일상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이 몹시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평온하게 살고 싶네. 아마도 남들과 달리 유행을 쫒지 않고 연애에도 큰 관심이 없어서 최소한으로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 엣짱의 경우 루키와는 전혀 다른 외향적인 성격에 굉장한 수다쟁이이다. 불만스러운 것도 거침없이 표현하는 솔직한 성격인데, 꾸미는 데는 또 진심이며 유행에도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연애에도 진심이다. 현재는 자신보다 한참 직급이 낮은 잘생긴 신입 사원에 푹 빠져있는데, 종종 꿈을 꿀 정도로 매우 귀여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고백은 못 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딱 한명만 있어도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오랜 친구이자 이웃 사촌으로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어찌나 정답던지. 보는 내가 다 흐뭇해진다. 사실 어린 시절이 아니고서는 동네 친구를 갖기가 상황상 쉽지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매일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그녀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책의 표지의 문구처럼 정말 인생에 나를 이해해주는 속 깊은 동성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에서 나온 엣짱의 애정 섞인 타박과 이에 꿈쩍않고 오롯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는 루키의 우정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단 한 권밖에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인데,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함인지 마지막에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지만, 여전한 루키와는 달리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진 엣짱 모습에서 조금 뭉클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구나 싶어서 또 한 번 흐뭇해지던 컷.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가 떠올려지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더 마음에 오래 와 닿을 것 같다. 아마도 가끔씩 들여다볼 듯한 이 책의 매력. 다음 권이 없는 게 너무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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