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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이라는 단편 만화집을 읽었다. 전에 읽었던 <반지수의 책그림>에서 저자가 흥미롭게 추천하길래 무척 궁금해서 얼른 읽어봤다. 그러고 보니 다니구치 지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엄청 유명한 작가인 <고독한 미식가>의 저자인데 이제서야 그의 첫 책을 읽어본다.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 책소개

그의 대표작은 커녕 이전에 관련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비교하기 어렵지만,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드는 만화였다. 어린 시절에는 하이틴 로맨스나 풍부한 서사와 아름다운 그림체에 이끌려 만화를 고르곤 했는데, 당시였다면 절대 쳐다도 안 봤을 책인 듯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읽었으면 이 책의 매력을 십분도 이해하지 못 했을 듯.

 

산책-책표지

출판년도 : 2015
출판사 : 이숲
저자 : 다니구치 지로

 

다니구치 지로는 1947년 일본 돗토리 현에서 양복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에 심취해서 이미 중학교 때부터 잡지에 만화를 투고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의 열정과 실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졸업 이후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가 만화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 속 직장인의 모습이 그렇게 리얼했나보다.

 

 

 

진짜 산책을 하듯 따라가는 독특하고 잔잔한 연출

산책을 한다는 것이 어떻게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긴 만화가 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읽고 나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후기를 읽어보니 저자 또한 새로운 시도를 시험해 본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캐릭터 위주의 깊은 서사와의 달리하여 그림의 표현 영역을 확대해보고 싶어 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사실 이런류의 잔잔한 만화는 앞서 말했듯 예전같은 잔잔하고 지루하다고 안 봤을 법한데, 현실의 노곤함을 실컷 겪은 어른이 되고 나서 읽고 보니 정말 산책하 듯 책을 읽으면서 모처럼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안그래도 바쁜 현대사회에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요새는 글이 잘 안 읽히고, 읽으려고 하면 은근 스트레스인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머릿 속을 개운하고 맑게 비워주는 느낌을 준다. 마치 천천히 풍경을 걸으며 산책하며 머리가 실제로 개운해지듯이 말이다.

 

저자가 의도한대로 많은 대사도 특유의 만화적 효과음도 거의 배제되고 절제된 그저 덤덤히 걷는 약간의 독특한 인물을 따라 이어지는 방대한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신기하게도 그 풍광을 직접 느끼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오히려 효과음과 대사를 줄임으로써 조용해진 화면에 자연의 소리가 착각처럼 들리는 기분이랄까.

 

 

 

뛰어난 작화와 깔끔한 스토리 전개의 매력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걷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가진 산책을 테마로 한 긴 단편 외에도 뒷편에 아주 짧은 3편의 단편이 더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단편이 제일 좋고 와 닿았다. 만화를 읽으면서 촘촘하고 세밀한 그의 작화에 놀라워하면서도 은근 만화적으로 완벽하게 구성해내는 내공이 참 감탄스러웠다.

 

 

역시 대중적으로 성공적인 작품을 내놓는 작가의 역량은 확실히 다르긴 한 것 같달까. 뿐만 아니라 그저 산책을 하는 내용이 뭐가 재밌을까 싶은데, 은근 소소한 에피소드가 구성져서 보는 재미가 있다. 대신 한 번에 몰아서 볼 타입은 아니고, 짧은 에피소드를 가끔씩 틈틈히 여유 시간에 읽기 좋았다. 

 

<고독한 미식가>가 드라마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만큼 유명한 작품임에도 아직까지 보지 않은 건 음식을 직접 먹는 거 외에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구경하는 걸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언제 한 번 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그 전에 다른 단편들부터 천천히 한 권씩 봐야할 듯. 

 

일본 특유의 잔잔한 감성과 깔끔한 연출이 돋보이는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 색다른 만화적 연출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생각지 못한 의외의 재미와 힐링을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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