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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걸쳐 매우 천천히 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을 완독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이전에 읽었던 <눈부신 안부>라는 소설 덕분. 생각지 못하게 취향저격이었던 잔잔한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한참 여운을 누리던 중 이 책과 함께 추천한다는 댓글을 통해 <단순한 진심>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진심 책리뷰

마치 식탁보를 연상케하는 파란 체크톤에 제목과 저자 이름에 자수를 놓은 듯 디자인한 표지를 보는 순간 바로 마음에 들었다. 표지가 예쁘다고 내용도 흥미로울 것이라 단정지울 순 없지만, 이왕이면 아름다운 표지가 더 마음에 들긴 하다. 읽기 전에는 표지만으로 어떤 내용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읽고 나니 다시금 표지가 무슨 의미일가 생각해보게 된다. 참으로 심오하군.

 

단순한-진심-책표지

출판년도 : 2019
출판사 : 민음사
저자 : 조해진

 

소설 분량은 260페이지 정도라 딱 좋다. 개인적으로 너무 두꺼운 책은 들고다니기도 힘들고, 읽기에도 지친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진심>은 가벼워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참 좋은데, 적은 분량에 비해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았다. 이유는 지루한 내용 때문은 아니고 예상했던대로 잔잔하고 뭉근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 천천히 읽고 싶어졌다.

 

뭐 원체 한 번에 많이도 빨리도 읽지 못하는 독서력이라, 더욱 오래 걸렸던 듯 하다. 읽고 나니 <눈부신 안부>가 떠오를 만큼 두 소설의 느낌이 참으로 비슷했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뭔가 전개 방식이나 분위기랄까. 예전엔 몰랐는데 이런 소설이 취향이었나보다.

 

사실 전에는 소설은 무조건 마지막 결말 또는 반전을 위해 힘겹게 참고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버거워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색한 번역체의 영미권 소설이 더욱 그랬던 듯. 최근에 다양한 장르들을 읽어보면서 새롭게 소설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느린 호흡과 유려한 문장에 매료되고 있달까. 그새 조금은 독서력 성장을 했나보다. 감격.

 

 

 

진실을 찾으러 오랜만에 고향에 온 주인공

이 책의 주인공 나나는 어릴 적 프랑스에 입양되어 극장가로 활동하고 있다. 든든하던 양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버리고, 연인과 헤어진 채, 홀로 새로운 생명을 품은 그녀는 우연히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찍으려는 서영의 제안에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자신이 '우주'라고 이름 붙인 배 속의 태아의 존재는 숨기고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나는 오랜 전 철로에서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가 붙여주었을지 모르는 문주라는 이름의 뜻을 궁금해한다. '문기둥'일지 '먼지'일지 모를 이름의 뜻과 함께 왜 자신을 계속 키우지 않고 입양을 보냈는지에 대한 의문과 원망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서영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찍으면서 진실들을 수소문해나간다.

 

하지만 생각보다 희미한 기억, 그리고 잡히지 않는 진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복희 식당의 주인 연희를 알게 된다. 처음 만나자마자 자신을 따뜻하게 반기며 그리운 맛의 음식을 나눠주던 그녀. 그녀의 입을 통해서 그녀 또한 아이를 보냈었다는 과거를 알게 되고 처음에는 반감을 가지지만, 점차 생모와 같은 정을 느끼며 문주는 연희의 삶에 점점 스며들게 된다.

 

 

 

쉽지 않은 해외입양인 소재를 다룬 소설

<단순한 진심>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해외 입양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왜 인지 모르지만 평소 해외 입양인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던터라 나에게는 그렇게 낯선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영상 속 짧은 인터뷰가 아닌 소설로 한 사람의 서사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라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달까.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굉장히 아픔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잔잔하게 흘러가도 담담하게 속마음을 말하는 주인공으로 인해 이야기는 쉽게 읽혔지만, 읽어나갈수록 묵직하게 울려서 나중에는 먹먹해진달까. 시작은 문주가 갖고 있는 단편적인 기억에서 이어나가는데 마치 안개에 쌓인 듯 막막하게 흘러간다.

 

중반부에도 과연 이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데, 소설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힌트들로 작은 희망들을 전하고 있지만, 끝내 답답함을 해소시켜주진 않는다. 어쩌면 메인은 문주와 기관사가 아니라 문주와 연희가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그렇게 깔끔하게 주인공을 나눌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인연의 실이 엮인 듯. 문주, 기관사 그리고 그의 가족들, 연희와 복순, 복희, 노인 그리고 서영이와 친구들, 그리고 우주까지. 다 만날 인연이었던 듯 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에게 스며들듯 진심을 다한 순간들이 모여 지금이 된 듯.

 

뭔가 책의 제목처럼 단순하게 진심만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한 이야기들이 맞물려 나가는 듯 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함과 벅참이 배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에 꽤나 몰입을 했던지 마지막에는 와 닿는 문장이 많아서 아주 마음으로 여러 번 동그라미를 쳤을 정도.

 

 

 

소설보다 더 씁쓸하고 경악스러운 현실

소설은 꽤나 흡족스럽게 마무리가 지어졌지만, 다시금 현실의 씁쓸함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구조적인 잔인함과 어른들의 욕심으로 시대의 아픔이 되어버린 해외입양인들이 여전히 고향을 찾아오고 있지만, 현재 우리는 어떻게 그들에게 온기와 진심을 전하고 있나는 생각해보면 참 씁쓸한 일이다. 

 

 

어떤 이유로 보냈든 이미 생김으로 태생적부터 차별을 받고 고통속에서 혼란을 겪었을 이들이 많을텐데 적어도 자신이 어떻게 존재했고 왔는지, 그리고 부모는 누구인지 분명이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문주가 자신의 이름 뜻 하나로 복잡해하고 감격하고 위안받는 다사다난한 과정들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졌기 때문.

 

최근에 입양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데도 불구 여전히 해외입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제는 못 사는 나라도 아닌데 도대체 왜 보내는 것일까. 과거에는 전쟁과 혼혈 등의 이유로 보내졌다지만 현재는 미혼모의 자녀가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뉴스에 참으로 씁쓸하기 이를데가 없다.

 

저출산이 문제다 여러 뉴스에서 떠들기보다는 우선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를 계속 방조하고 해외로 보낸다면 또 문주와 복희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과 존재의 이유를 찾으러 방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잔인한 일인 것 같다.

 

 

 

마음에 남는 책속 글귀들

먼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여느 때보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내 외로움은 노파의 오래된 하루를 빌려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 것인지 노파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 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는 건 외롭고 쓰라린 것· · · · · ·.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p.213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 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 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220

 

간호사의 그 말은, 저 문밖에 새로운 죽음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번역되어 들렸다. 병실은 스크린의 안이거나 바깥이 아니라 그저 삶과 죽음 사이의 대합실인지도 몰랐다. -p.238

 

상상되는 장면이 있었다. 암흑으로 돌아간 연희와 암흑 속을 부유하는 우주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고요하게 스쳐 가는 장면이었다. 우주가 시간을 초월한 진화의 과정을 겪으며 이 세계 안으로 흘러오는 그 거리만큼, 반대로 연희는 육신의 성분을 상실해 가며 세계 밖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p.244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저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또 어떤 생을 살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마다 다른 그들의 근원과 살아온 과정과 먼 미래를 생각하니 생명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날, 생명이 화두인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온전한 우주가 되기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258 작가의 말

 

온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작 온기 앞에서 망설이고, 진심이라는 말을 들어도 쉽게 믿을 수 없어하는 시대에 이 소설은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나조차도 온전히 말할 수 없지만, 나를 증거해 줄 타자들로 인해 진실은 확인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삶의 증인이 된다.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이면서 소설 밖 우리의 이야기이다. -p.263 추천의 글(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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