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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위저드 베이커리>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의 책 표지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반지수의 작가의 신간을 읽으면서 그녀가 쓴 다른 책들도 함께 들여다봤다. 보통 관심있는 작가나 소재가 생기면 관련 책을 싹 다 보는 편인데, 이 책은 소소하게 작가가 좋아하고 읽었던 책들이 소개되어 꽤나 흥미롭게 끝까지 읽을 수 있다.
반지수의 책그림 서평
이 책은 2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중간에 귀여운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다. 목차는 저자가 읽은 책과 그린 책 2가지로 크게 구분되어 있는데,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과 경험 그리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 늘어나버렸다. 좋은 책들을 많이 알게 된 건 좋은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런지. 하하.
출판년도 : 2024
출판사 : 정은문고
저자 : 반지수
원래 작가들은 책을 다양하게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반지수 작가의 책 취향은 실로 다양해서 놀라웠다. 정치외교학 전공이었던 것 답게 시사, 인문, 철학을 넘어서 문학, 소설, 화집, 전기, 에세이, 만화, 그림책까지... 한 가지 장르에 머물지 않는 다양함이 흥미로웠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재밌어서 끝까지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취향의 원형은 어떤 책일까?
읽으면서 몇몇 에피소드들에서 무척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작가 또한 호기심이 많은지 관심있는 분야가 있으면 확 파고드는 열정이 돋보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책뿐만 아니라 관련 인터뷰와 에세이까지 모두 섭렵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릴 적 좋아하던 그림책을 찾기 위해 일본 헌책방을 바쁘게 휘젓고 다닌 이야기까지.
덕분에 나도 읽다가 궁금해져서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그림책을 찾아보고 말았다. 교원에서 나온 전집인데, 니콜레타 코스타의 <게로 변한 임금님>이라는 책인데, 관련 시리즈가 5권 정도 있었다. 당시에는 예쁜 그림체에 독특한 이야기가 재밌어서 아주 닳도록 이 시리즈만 본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보니 당시 생각했던 느낌과는 살짝 다르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은 맞다. 어린 시절에 보거나 경험한 것들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무의식에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데, 이 책은 어찌보면 작가의 말대로 나의 취향의 원형을 발견한 셈이다. 더불어 또 생각나는 책은 꼬마 흡혈귀 시리즈.
우연히 피아노 학원 한구석에 꽃혀있던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 시리즈가 안 나와서 무척이나 아쉬웠었다. 그런데 최근에 찾아보니 새롭게 전 시리즈가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림체는 뭔가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전에 친숙한 그림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또 한길로 빠져서 한참을 추억놀이를 했다.
독서 근육 키우기의 필요성
읽으면서 <빨간 머리 앤>에서 <비밀의 화원>, 그리고 타샤 튜더의 그림으로 관심사가 확장되는 에피소드에서 무한 공감을 일으켰다. 보면서 어쩜 나랑 똑같은 경로로 빠지는 게 신기하던지. 사실 책이란 게 참 신기한 것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관련 책으로 자꾸 넘나들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취향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다른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에서는 확실히 넘사벽 공부파구나 싶었다. 괜히 정치외교과를 졸업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던 부분은 일찍이 다른 이들의 삶과 사회에 관심을 갖고 대학 시절에 치열하게 노동, 인문, 철학 등 딱 봐도 쉽지 않은 주제의 책들을 자발적으로 섭렵해나간 스토리였다.
비록 대학을 졸업하고 일상을 해가면서 점차 예전과 같은 책읽기가 어려워졌지만, 작가는 꾸준히 책모임을 나가며 심도 깊은 책읽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나름 책을 소소하게 꾸준히 읽어왔지만 괜시리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가볍고 무난한 책들만 그동안 읽어온 것은 아닌지.
물론 독서가 의무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억지로 하는 건 재미가 없고 오래할 수 없으니까. 현재에도 앞으로도 독서는 나의 즐거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이어나갈 생각인데, 가끔은 어려운 책도 도전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작년 소설 버킷리스트를 하면서 <전쟁과 평화> 대서사시를 힘겹게 읽었는데, 뭔가 조금 느껴지는 바가 있었기 때문.
저자 또한 대학 시절처럼 열정을 다해 읽진 못하지만, 당시 독서 기본기를 탄탄히 잡아놨기 때문에 현재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더욱 다양한 책들을 깊게 읽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동안 다소 편식했던 독서 습관을 들여다보고,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책방과 출판계를 지키기 위한 소소한 실천
차분하고 잔잔한 힐링계 소설의 표지를 주로 그리는 것과 달리 반지수 작가는 힐링계 소설이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그런데 여러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읽는 소설보다는 좀 더 심도 있는 순수 문학을 좋아하는 것 같달까.
그 외에 책을 읽으면서 절로 끄덕여졌던 대목은 작은 책방에 가면 책을 꼭 한 권씩 사온다는 것이었다. 출판계 지인을 통해 말도 안되는 구조의 출판계 현실을 들으면서, 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 때부터 작은 책방에 가도 꼭 책 한 권을 사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책만큼은 꼭 사서 책장에 가득 채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미니멀리즘에 빠져 한바탕 비우고, 요새는 책값이 부담된다고 잘 안 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책방이나 도서관은 아주 잘 갔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유지되길 원한다면 그 공간을 살리기 위한 행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작은 책방을 방문하게 된다면 머쓱하게 구경만 하고 나올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서 기분 좋게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그 서점만에서만 판매하는 독립출판물을 고르는 것도 나름 특별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글귀들
"재능이란 세상에서 널리 회자되듯 평범한 사람에 비해 어떤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갖고 있는 능력이 한두 가지 결여된 상태를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뜻이 될까요?"
사람들은 무언가 결여된 것을 '문제'라고 말하고 고쳐야 할 것,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미루야만 겐지는 이전에 없던 발상과 엉뚱함을 갖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가 어디에 있으리라고 믿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나서주길 간곡하게 바란다. 이미 글을 쓰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어딘가에서 독특한 발상을 하고 있지만 펜을 듣고 있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이라니.
클래식한 그림이나 트렌드한 그림에도 감동할 만한 포인트는 있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어쩐지 나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던 그러나 우리가 간과했던 세상의 이면을 포착해낸 아름다운 그림을 늘 기다린다. - p.102~103
오히려 책을 읽다 보니 알게 됐다. 자꾸 무언가가 되려고, 이상적인 것에 도달하려고 애쓰다 보면 점점 그 이상과 현실 사이 갭만 느끼게 될 뿐임을.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괴로워하느니 그냥 내가 밡아온 길 자체를 인정하는 게 지혜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마치 친구나 연인을 만나듯 우연히 그 순간 이끌리는 것에 따라갈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이 책을 만나는 과정은 모두에게 각각 고유한 서사를 지닌다.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같은 건 없다.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 역시 없다. 누군가가 읽은 것을 내가 읽지 않았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열등해지는 일도 없다. -p.168
본디 산책이란 끊임없이 차분해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활기찬 곳을 걷는다 해도 그 길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홀로 산책하는 중이라면 내면은 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비추어 그 행위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입을 꾹 다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자극을 받는 동안 내 안의 감정은 분주하되 소리 없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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