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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는 재작년 소설책 읽기 버킷리스트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꽤 오래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책의 표지와 감성에 이끌려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단편들을 모아놓은 거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2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어보게 되었네요.

 

 

 

 

지구 끝의 온실 책소개

컬러풀하고 예쁜 표지에 이끌려 집어든 <지구 끝에 온실>은 2021년에 발간된 김초엽 작가의 SF장편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SF장르를 그 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우주 관련된 부분은 전혀 관심이 없어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도 겨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여러 단편들 중에 좋았던 작품도 있었지만 역시 SF는 흥미가 크진 않더라구요.

 

지구-끝의-온실-책표지

출판년도 : 2021
출판사 : 자이언트북스
저자 : 김초엽

 

하지만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왜 이 작가의 작품이 인기가 많은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전공자 특유의 탄탄한 지식을 배경으로 펼쳐가는 이야기 속에 환상적인 시선과 감성적인 감정선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담담하면서도 조용히 설득해나가는 이야기의 힘인데요.

 

다소 이질적이고 낯선 세계를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관객을 세계 속으로 이끌어내는 작가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이런 면모는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더 잘 느껴졌습니다. 단편의 경우 세계관에 적응하고 이야기에 빠져들어갈만하면 끝이 나버려서 뭔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는데요.

 

장편의 경우 천천히 깊게 세계관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서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낯설다 보니 집인장벽이 살짝 있긴 했지만, 문제 자체가 굉장히 술술 잘 읽혀서 금방 익숙해지더라구요. 거기다 의문스러운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진실을 밝히는 과정도 무척이나 흥미로워서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줄거리 (결말 스포O)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주인공 아영을 중심으로 현재, 그리고 아영이 만난 나오미와 아미라라는 두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현재에서 조금 시간이 흐른 미래의 이야기를 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1장. 모스바나

2129년 더스트 시대가 종식된 이후 더스트 생태연구소에서 식물생태학자로 일하고 있던 아영은 폐허 도시가 되어버린 해월에 갑작스럽게 출현한 악마의 식물 '모스바나'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향합니다. 해월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사람들로부터 식물에 푸른빛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릴 적 이웃 노인의 집에서 봤던 푸른빛을 떠올리게 됩니다.

 

연구소로 돌아온 아영은 모스바나를 분석하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괴담 사이트에 가볍게 올리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모스바나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답변이 오고, 그녀는 더스트 시대에 모스바나를 약초로 활용해 사람들을 구한 '랑가노의 마녀들'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나오미와 아마라를 만나러 가게 되죠.

 

 

 

2장. 프림빌리지

 

 

두 자매는 아영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간의 욕심과 실수로 탄생한 더스트라는 먼지로 휩싸였던 2058년 더스트 시대에는 붉은 안개로 인해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었죠. 내성종이었던 나오미와 달리 약했던 아마라는 자신들을 괴롭혔던 실험과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식물과 내성이 없는 사람들도 살 수 있는 프림 빌리지의 존재를 듣게 되고, 두 사람은 간신히 그 곳에 닿게 됩니다. 프림 빌리지는 식물학자 레이첼과 리더 지수를 필두로 여러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었죠. 신기하게 그곳에서는 식물이 자랄 수 있었고,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며 나름대로의 규칙 속에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외부자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프림 빌리지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내부 고발자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사이는 서서히 분열됩니다. 거기에 더스트 폭풍과 더불어 또 다시 침입한 외부인들로 인해 마을 사람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리더 지수는 세상 곳곳에 프림 빌리지를 만들라며 레이첼이 개발한 덩굴 식물을 나누어 줍니다.

 

 

 

3장. 지구 끝의 온실

두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고국으로 돌아온 아영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잘 해주었던 노인 이희수의 집을 다시 찾아가 그녀의 흔적과 진실을 쫒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의 기억을 남긴 메모리칩을 통해 진실에 크게 한 발짝 다가서게 되죠. 이후 간신히 만나게 된 레이첼을 통해 과거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되고, 모스바나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독성과 엄청난 번식력을 지닌 모스바나에겐 더스트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프림 빌리지를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이 가져간 식물이 바로 모스바나였던 것이죠. 전 세계로 이동한 사람들에 의해 모스바나는 널리 퍼치게 되었고, 그 결과 더스트 시대가 종식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아영은 전 세계에 진실을 알리기로 하죠.

 

 

 

낯선 세계지만 어딘가 익숙한 상황과 이야기

 

 

먼 미래나 과거 혹은 다른 세계라 할지라도 재난 상황의 원인은 꼭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 또한 인간의 욕심과 실수에서 비롯되었는데요.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끔직한 재난이나 사랑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재건하고 다시 살리는 역할은 또 인간이라는 점에서 참 뭉클한 감동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 속 배경은 먼 미래에 낯선 세계지만 더스트라는 붉은 먼지로 인간이 고통받는 상황은 마치 몇 해 전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만들었는데요. 저자가 코로나 시대를 염두해보고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코로나가 아니여도 인간의 역사에서는 주기적으로 끔찍한 전염병이 항상 있었던 것을 보면 그다지 새로운 스토리는 아닌 듯 합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국경간의 봉쇄를 넘어서 서로의 다름을 혐오하던 상황까지 번저가던 일들은 마치 더스트 시대의 돔 안과 바깥, 그리고 프림 빌리지 마을 사람들의 내부 분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결국 이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는 것이라는 점이 깊게 와 닿더라구요.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항상 생물학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크지만 어찌보면 제일 약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식물에 의한 감염병이나 엄청난 날씨의 재난에 쉽게 휩쓸리고 죽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죠.

 

현재도 계속되는 기후위기로 날로 심각해져가는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과연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과 생각을 무엇일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듯 합니다. 단순히 자연을 아끼고 사람들과 함께 힘을 보태야지 하는 막연한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바로 행동함으로써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이죠.

 

<지구 끝의 온실>은 SF장르임에도 명확한 세계관과 다양한 인간 군상의 애틋한 감정이 얽혀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였는데요.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네요.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2022년 드라마로 영상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그 이후로 소식이 딱히 없어서 진행과정은 모르겠으나 과연 독특한 세계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얼른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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