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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8번째 소설로 무엇을 볼까 하다가, 요새 책방이나 온라인 책 사이트에 자주 보이는 책 한권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황보름 작가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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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책소개

원래 이 책은 종이책이 먼저가 아니라 전자책 구독 서비스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으로 먼저 공개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전자책으로 본 독자들이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다고 열렬히 요청하여 이렇게 정식으로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간 이후에도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으며, 이렇게 10만부 기념 한정으로 여름 에디션까지 나왔더라구요. 기존 서점 이미지는 동일하지만, 좀 더 푸릇푸릇한 느낌으로 바뀌었는데 두 가지 표지 모두 다 매력적입니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표지

이 책을 쓴 황보름 작가는 놀랍게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일하는 와중에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틈틈히 꾸준히 이어간 결과 이 책을 포함하여 여러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일만 하기에도 벅찬데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공학도 하니 왠지 과학도였던 김초엽 작가가 떠오르네요. 자신의 분야와 비슷한 장르의 책을 썼던 김초엽 작가와는 다르게 이 책은 공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잔잔한 일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줄거리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표지의 그림처럼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영주와 그와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여러 사람들의 따뜻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휴남동에 우연히 깃들어 동네 서점을 오픈하게 된 영주는 초반에는 마치 사연있는 여자처럼 슬픈 표정으로 아무런 의욕없이 가만히 서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보냅니다.

 

실제로 마음 속 상처가 있었던 영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서점을 열게 된 것인데요. 초반에는 그녀의 조용한 텐션으로 손님이 드문드문 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서점일과 서점 내 커피까지 운영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영주는 서점일에만 매진하기 위해 바리스타 민준을 고용하게 됩니다. 영주처럼 말없이 거리를 지켜주는 민준 덕분에 두 사람은 서점일을 무난히 잘 해나갑니다.

 

저한테 조르바는 자유의 종류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이 세상엔 여러 자유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유는 조르바인 거죠.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엄두도 나지 않아요. 저도 애초에 그 소설 속 화자로 태어난 사람이니까요. 조르바 같은 사람을 동경할 뿐인, 그런 사람. 그게 저예요.

장래 희망이나 목표로 전환되는 꿈이 아니라 진짜 꿈. 남자가 포르투갈행 열차를 타고 갈 때, 그 남자를 움직이게 했던 그런 꿈. 민준은 그 남자가 도착한 곳에서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의 삶과 완전히 다른 내일의 삶.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남자의 내일은, 꿈을 이룬 이의 전형이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깨달음으로 다가오곤 했다. 오늘도 민준은 이 당연한 깨달음에 약한 전율을 느꼈다.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고민을 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불안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소중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우리는 이 삶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알 수 없다. 처음 사는 삶이니 5분 후에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알 수 없다.
-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커피 원두를 구매하는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그리고 민철 엄마 희주와 인생이 재미없는 고등학생 민철, 뜨개질 하는 단골소님 정서, 작가 승우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서점을 찾아들고, 점차 전보다 활기를 띄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소극적이였던 영주도 힘들었던 과거를 딛고 서점 운영에 힘써나가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성장해나갑니다.

 

 

 

특별한 사건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는 일상 이야기

책은 휴남동 서점이라는 곳을 유일한 무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문체는 영주의 조용한 성격처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어집니다. 어떠한 특별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저 자연스럽게 흐르듯 그려지는 서점 내의 일상이 담겨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특정한 목적이나 사건을 끌고 가는 이야기가 좀 더 몰입감을 내긴 쉬우나, 오히려 이렇게 한정적인 곳에서 움직임없이 잔잔히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간다는 것은 참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민준은 성철에게서 고개를 돌려 영주와 지미를 바라봤다. 영주는 성철 옆에서, 지미는 관객석에서 성철이 재미있는 말을 하면 웃고 진지한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입 끝에 어린 미소가 성철의 입담을 끌어내주고 있는 듯했다. 저 미소가 민준에게 시간을 준 것이다. 천천히 삶을 받아들일 시간, 서툴러도, 실수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게 해준 시간.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엄청난 재미가 가득한 흥미진진한 장르는 아니지만, 무난한 일상의 이야기가 충분히 잘 읽히고 마음에 남는 대사와 장면들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한 곳을 무대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관계되면서 이어진다는 점에서 얼마 전에 읽은 <불편한 편의점>이 살짝 떠오르긴 하더라구요. 물론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소통이 담긴 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카모메식당, 리틀 포레스트같은 힐링 소설

알고보니 저자는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같은 본인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으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동네 서점, 책, 좋은 문구, 성찰, 배려와 친절, 서로간의 거리를 지키는 좋은 사람들간의 우정, 느슨한 연대, 진솔한 대화 등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담았다고 합니다.

카모메식당-리틀-포레스트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주는 이야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일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듯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 작가의 말

 

평상시에 적당한 거리와 느슨한 연대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피로가 풀리는 듯한 힐링되는 느낌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힐링소설이 다소 뻔하디 뻔한 정형적인 편이 많아서 편견이 많았는데, 잘 쓴 소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왜 이 소설이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겠더라구요.

 

 

 

흥미로웠던 동네서점 운영기

그리고 평상시 자주 가던 동네서점의 운영이라던가 고충 등이 은근 리얼하게 담겨서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서점운영하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달까요. 어떻게 서점을 더 잘 운영할까 늘상 고민하는 영주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가시적으로는 현실적인 서점을 운영하는 이야기같긴 하지만, 자세하게 깊이 들여다보면 너무 무난하게 잘 나가는 전개가 다소 환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전하는 메세지는 굉장히 와 닿고 좋았어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거든. 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 바람만 맞으면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엔 바람이 없다는데 그럼 여기가 지옥은 아닌 듯하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인간은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맞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만 골몰하지 말자. 그럼에도 내겐 여전히 기회가 있지 않은가. 부족한 나도 여전히 선한 행동, 선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실망스러운 나도 아주, 아주 가끔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하고요. 이렇게 생각을 하니 조금 기운이 나네요.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 기대도 되고요.

무언가를 계속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을 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주변 사람들 덕분에 매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영주에 어느새 동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영주의 성장을 보면서 다시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서로 배려하는 느슨한 연대의 필요성

읽는 내내 정말 이러한 따뜻한 공간에서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들더라구요. 어둑하고 후미진 골목에 이런 서점 하나가 일상의 위안을 주듯 동네에 이런 작은 책방이 하나 있었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어찌 보면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은 요새 들어 더욱 이런 잔잔하고 따뜻한 힐링소설이 더 각광을 받는 것 같아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책과 서점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이 있게 펼쳐진다.”(소설가 김금희 심사평) 서울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동네의 후미진 골목길.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가정집들 사이에 평범한 동네 서점 하나가 들어선다. 바로 휴남동 서점!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얼굴에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서점 주인 영주는 처음 몇 달간은 자신이 손님인 듯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책만 읽는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둘 되찾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소진되고 텅 빈 것만 같았던 내면의 느낌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꽤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 휴남동 서점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된다. 사람이 모이고 감정이 모이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으로. 바리스타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작가 승우, 단골손님 정서, 사는 게 재미없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의 엄마 희주 등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고 있지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가득한 책이다.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등. 출간 즉시 전자책 TOP 10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수많은 독자의 찬사를 받은 소설이 독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마침내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저자
황보름
출판
클레이하우스
출판일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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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넘치는 장르물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물흐르듯 책으로 치유를 해보는 시간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혹시 따뜻한 감성 소설 좋아하신다면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가볍게 읽어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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