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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좋아했고 재미있게 읽어던 여러 작품들이 생각났는데요. 아쉬운 것은 엄청난 대작 스토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적 환경 때문에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지고, 지원이 부족하거나 또는 작가의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된 아쉬운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미완결된 수작 국내 만화책 소개
지금은 웹툰형식의 스크롤 만화가 익숙한 시대이지만, 여전히 저는 넘기는 아날로그 책을 좋아하는데요. 아무래도 내려보는 형식의 연출을 지닌 웹툰은 웹에서는 그 효과가 극대화되지만, 책으로 나올 경우 그 연출의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어버리더라구요.
책의 형식의 따라 연출할 수 있는 분위기도 여실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작가에 따라 어떤 연출이 필요한지에 따라 현재에도 꾸준히 출판 만화 형식의 책들이 간간히 나오는 것 같습니다.
1. END - 서문다미 ( 2000 - 2002 | 8권까지 출간)
첫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90년대 후반에서 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서문다미의 <END>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장편작인데요. 로맨스 장르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과감한 SF 장르를 선보이며 신인답지 않은 놀라운 기획과 아이디어로 흡사 마니아층을 이루었던 작품입니다.
사실 초반에는 작가의 어색한 인체 스타일의 작풍이 논란이 되기도 했었지만, 꾸준한 작품 스타일로 그마저도 작가의 완전한 스타일과 개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소재의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신선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END>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스토리는 평범했던 여고생이였던 명인에게 자신과 똑닮은 외모의 자하가 나타나고, 그녀에게 여러명의 쌍둥이 자매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녀들을 주시하는 시우와 가민, 초능력자들의 집단 뉴헤븐이 등장하면서, 평범했던 그녀의 삶의 실제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 작품이 수작인 이유는 탄탄한 세계관과 스토리의 연결성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1호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을 굉장히 몰입감있게 지루할 틈없이 이끌고 나아가는 굉장히 흡입력이 높은 작품입니다. 왠지 뻔하게도 중요한 인물 1호는 주인공 명인인 것이 틀림이 없어야 할텐데, 실제로 이야기를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지 않게 흘러가니 정말 빠져들며 볼 수 밖에 없어요.
도대체 1호가 누구냐를 많은 독자들이 찾으며, 완결을 보길 희망했지만, 현재는 8권으로 중단된 상태에요. 그리고 출간된지도 오래되었다 보니, 작가조차 너무 복잡하여 더이상 그리지 못하겠다고 포기해버려서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안타까운 작품이에요. 희망은 사라졌지만 부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마지막이 너무 궁금하거든요.
2. 프린세스 - 한승원 ( 2000 - 2008 | 31권까지 출간)
국내에서 이렇게 장대한 서사시의 유럽 시대극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요. 그 어려운 것을 한승원 작가가 해냈습니다. <프린세스>는 가상의 유럽세계를 배경으로 무려 3대를 넘나드는 대서사시를 그린 훌륭한 작품인데요.
국내 출판만화의 전성기였던 시대에 거의 1세대급으로 활동하던 작가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세계관과 인물들의 관계과 섬세하고 탄탄합니다. 전형적인 순정만화풍의 따뜻한 그림체를 지닌 작가는 전작들에서 굉장히 발랄한 로코 장르의 작품을 그렸었습니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라미라, 아나토리아, 스라르드라는 3국을 주 무대로 라미라의 비욘왕자와 유모의 딸 비이의 비극적인 사랑과 그들의 딸 프리를 주인공으로 진행되며, 그와 주변에 연결된 다양한 인물들의 여러 관계과 얽히면서 진행됩니다.
사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워낙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사랑, 그리고 권력다툼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소개하기는 어려운데요. 그만큼 방대한 스토리를 가져서 한 번 보면 그 세계관에 푹 빠져서 보게됩니다. 현재는 31권까지 나왔는데요. 후반권이 되어서야 비로소 3세대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안타깝게도 작가님의 투병소식과 함께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많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네이버에서 잠시나마 짧게 추가 연재가 진행되었는데, 현재는 이 마저 중단되어 많이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부디 작가님이 완쾌되어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하시길 바랄뿐입니다.
3. 세인트 마리 - 양여진( 2002 - 2004 | 7권까지 출간)
양여진 작가는 서문다미 작가 못지않게 로맨스부터 중세유럽, 판타지, 뱀파이어 등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풍부한 소재와 신선한 기획력으로 흡입력 있는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었던 작가인데요. 특히 작가의 작품 중 <세인트 마리>의 경우, 만화의 단골소재인 학생들의 주무대 학교를 배경으로 굉장히 독특한 컨셉을 입혀 흥미로움을 배가 시켰습니다.
세계관에 체스를 접목시켜 일부 학생들이 '현자의 돌'을 차지하기 위해 흑과 백팀으로 나뉘어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인간 체스판이지만, 이기는 방식은 체스말에 해당하는 학생을 서로 죽여야 싸움이 끝난다는 것이죠. 체스말에는 학생과 선생이 모두 포함되어 누가 누구인지 서로의 정체를 감추며 진행되는 스토리가 굉장히 몰입감이 있고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체스처럼 각각의 능력과 한계가 주어져서 임무를 수행할 때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흥미롭고, 인물들간의 관계 또한 굉장히 복잡해서 책 마지막면에는 밝혀진 인물들 위주로 관계도 그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워낙 장르소재를 좋아하는지라 너무 취향저격의 작품이였음에도, 당시에는 너무 파격적이였는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당시 출판만화계도 하향길로 접어드는 추세라 더 이상 스토리가 진행되지 못하고 미완결 남은 정말 아쉬운 작품이에요. 지금 나왔으면 화제성은 물론이고, 작품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재미있을 소재인데, 제발 누군가가 발견해서 작품으로 만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4. M의 천국 - 서현주( 2006 - 2008 | 6권까지 출간 -6권 작가님 자비로 출간)
마지막은 서현주 작가의 <M의 천국>입니다. 이 작가는 정말 독특하고 개성적인 스토리의 작품들이 많은데요.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초능력같은 소재를 사용함에도 인물 등의 성격이나 능력 그리고 스토리가 굉장히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작가만의 느낌이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그림 스타일이 제 취향은 아니고, 스토리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요. 우연히 한 번 보게 된 뒤로 완전 열혈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작가의 초기작 도 정말 애정하는 작품이 되었죠. 이 작품은 여주가 학교의 의문스러운 초능력자 클럽인 ESP에 들어가면서 벌어지게 되는데요.
독특하지만 비극적인 능력들을 가진 멤버들의 사연을 접하게 된 여주와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로,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도 END처럼 숨기고 있는 정체를 밝혀나가는 이야기인데요. 그게 누구인지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미완결로 끝이 나버렸어요.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수소문하던 중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작가님이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며, 연재를 이어나가는 시도도 하셨고 덕분에 6권도 자비로 발간을 하셨었는데요. 아쉽게도 계속적으로 자비로 해나가는 것에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한계를 느끼시고 현재는 중단하신 상태인데요. 마지막이 너무 궁금한터라 너무 아쉽더라구요.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한 아쉬움
이렇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제대로 완결짓지 못한 아쉬운 4편의 작품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요즘 넷플릭스에 많은 국내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전에는 해보지 못한 장르에 많은 도전과 더불어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굉장히 좋았던 작품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빛을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스팅을 써봤어요.
만화책 애호가로서 안타까운 것은 국내 출판만화도 해외못지 않게 과거 훌륭하고 멋진 작품이 많았고, 아직도 흙 속의 진주처럼 감추어진 수작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고 생각이 매번 드는데요. 시대나 상황에 의해 중단된 안타까운 이런 작품들이 부디 수작을 알아보는 제작자의 손에 멋지게 구해져서 다양한 콘텐츠로 다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개해드린 작품들은 모두 미완결 상태에 약 20년 전의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지만, 모두 독특한 컨셉에 탄탄한 스토리가 매력적이여서 흡입력이 상당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비록 엔딩을 알 길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흙속에 진주같은 이 작품들을 모두 한 번 봐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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