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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국 작가 최초로 아동 문학의 노벨상으로 손꼽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수지 작가인데요. 최근 작가의 첫 에세이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읽어보았네요. 바로 <만질 수 있는 생각>이라는 책입니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책소개

이수지 작가는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북아트를 공부하고, 졸업작품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여러 그림책을 펴낸 작가인데요. 책의 물성을 이용하거나 글 없는 혁신적인 구조의 그림책으로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놀이와 에너지를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만질-수-있는-생각-책표지

출판년도 : 2024
출판사 : 비룡소
저자 : 이수지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 <거울속으로>, <강이>, <선> 그리고 <여름이 온다>까지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해오며 그녀의 대표작들은 많은 대중들에게 놀라움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작가였지만, 최근에는 안데르센 상 수상 소식으로 더욱 더 인지도가 높아진 듯 합니다.

 

물론 그 전에도 무척 유명한 작가였지만 말에요. 가장 최근작 중 하나인 <여름이 온다>의 원화는 2021년 알부스 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적이 있는데요. 책에서 온전히 담아지지 않았던 자유분방하고 시원스러운 선들의 화합이 원화로 봤을 때 더욱 감동적이고 와 닿았던 기억이 있네요.

 

 

 

천천히 부담없이 읽기 좋은 에세이

 

 

책은 3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 큰 판본임에도 불구하고 글자보다 여백이 더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는데요. 아무래도 에세이 형식이다 보니 더욱 가볍게 읽힌 듯 합니다. 책 가격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인지 사진은 모두 흑백에 최대한 분량을 줄인 듯 했어요. 그래서 책 속에서는 오롯이 검정색 글과 사진만 볼 수 있는데요.

 

그 때문에 화려한 표지가 더 돋보이는 듯 합니다. 어찌보면 제한된 색을 사용했던 그녀의 작품들과도 닮은 듯한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작품 속에 예시로 든 책들이 많았는데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자꾸 검색하다보니 책읽는 흐름이 끊겨서 조금 귀찮고 번거롭긴 하더라구요.

 

저작권 관련되서 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작게라도 예시를 든 책 표지가 사진으로 실렸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흑백으로라도 말이죠. 그래도 최대한 사진을 줄이고 여백을 늘린 책은 더욱 글을 음미하며 읽어나가기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첫 에세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유명한 그림책 작가가 아닌 이수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어떻게 작가가 되었으며,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그림책을 알게 되고 하고자 마음먹게 된 것, 바쁜 육아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려는 여러 노력들.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점은 할머니 이야기인데요. 꽤 많은 연세에도 유며를 잃지 않았던 모습을 보며 이수지 작가의 유러머스함과 유연함이 여기서 나왔겠구나 싶더라구요. 저도 그런 유며 가득한 할머니, 아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어른'은, 우연히 자기 바로 앞에 선 작은 영혼에게 그때 당면한 최선을 다해 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그저 보여 주는 사람일지 모른다. 멘토라는 말은 흔하지만, 스스로 멘토가 되고자 한다고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단숨에 드러나지 않지만 말없이 삶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멘토가 있다. - 57p, 진짜 화가가 가르쳐 준 것.

  바다가 인형을 들고 와서 꿰매 달라고 했다. 뒷부분이 터져서 솜이 빠져나오려고 한다. 꿰매 주려고 바느질 도구를 들고 와 인형 엉덩이에 바늘을 꽃았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아...... 따가워." 옆에서 듣고 있던 바다가 킥킥 웃는다. - 141p, 무거운 것은 가볍게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여러 수상 소식들과 여러 작품들에 대한 호평들로 인해 당연히 탄탄대로를 걸었을거라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일기같은 내밀한 이야기 속에서 매 순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다짐들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도 출판사의 안좋은 관행을 겪는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책 속에서 정확히 명시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추측이 되었던 또 다른 국내 유명 그림책 작가의 백희나 저작권 사건 또한 씁쓸한 국내 출판계 현실을 드러내는 듯 해서 정말 안타깝고 분노하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은 작가라면 한번씩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수지 작가는 힘주어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실용적인 조언을 해줍니다. 

 

  나도 가끔 생각하곤 했다. 이 들끓는 에너지를 풀 곳이 없었다면, 나도 그 어떤 마블의 영웅도 대적할 수 없는 악당 중의 악당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미술의 좋은 점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늦고 빠른 것은 없다. 그러나 혹시 일찍 시작했다면, 만드는 것을 놓지 말고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계속하는 사람이 계속할 수 있다. - 157p, 최고의 악당
  
  작가들은 잘 모르겠는 항목에 대해선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설명해 주지 않거나, 관행이라며 넘어가려 들면 의심해야 한다. 관행이란 없다. 계약서의 조항이란 언제든지 삭제, 수정, 보완이 가능한 항목이다. 이것은 최초에 누군가가 작성한 기준일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나는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는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는 정당하게 대우받고 싶다. 오래전에 한 디자이너 선배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래서 예술가들은 안 돼. 딱 받은 만큼 일한다는 그런 개념이 없다니까." 맞다. 내가 받은 만큼만 정확히 제공하는 것 따위를 계산할 깜냥이 못 되는 우리는 결국, 넘치도록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집중하여 깔끔하게 계약을 해 두어야 한다. - 237p, 사적인 감정은 없어.

 

 

 

작품에 새겨진 즐거운 마음

 

 

이수지 작가의 책들은 항상 새로운 시선과 연출를 통해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주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두 아이의 육아와 일상속에서 작업을 해나가는 시간이 충분치 않지만 꾸준히 틈틈히 해나가는 모습에서 굉장한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하지만 뛰어난 대가나 무언가를 작게라도 성취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조금씩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나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저 결과물로써 작품을 볼 뿐이지만 그 책이 탄생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그저 예상만 할 뿐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요. 이수지 작가는 매번 새로운 책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영감을 버무리고 책을 만드는 과정을 꾸준히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멋진 책들이 연달아 나올 수 있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으로 작가로서 큰 명예를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노력보다도 더 눈에 띄었던 것은 글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그녀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분명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작업하는 과정을 매 순간 즐기는 모습이 여실히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그녀가 그린 책 속의 아이의 즐거움도 그대로 느껴졌던가 봅니다. 그 생생함의 원천은 온전히 내가 하는 일을 즐기는 데서 온 것이었죠. 자신의 삶과 작가적 인생을 차분히 담아낸 책을 다 읽고 나니 벌써부터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과연 어떤 또 멋진 작품이 우리를 놀래키고 즐거움을 줄까하고 말이죠.

 

  '즐겁다.'라는 기분이 없으면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독자의 자리로 돌아가도 만찬가지다. '즐겁다.'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작업은 끌리지 않는다. 내가 속절없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은 책 내용의 즐거움과 관계없이, 작업하는 작가의 즐거움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잘 짜이고 일견 모든 것이 계산된 작업조차, 그가 쓰는 선 하나, 색 한 조각에서 작가의 신나고 부푼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 책은 좋았다. 여기서 뭘 이뤄 보겠다는 욕심이나 작가적 자의식, 현란한 기교 따위는 그 신나는 마음에 밀려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책, 그런 그림책이 내 지갑을 열게 하고 기어이 내 책장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 같다. - 253p. 꼭대기의 그것(수지 너는 '흥'이 있잖아)

  이문재 시인이 말했다.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시일 수 없다. 좋은 시란 오독 가능성이 큰 시다." 글 없는 그림책이 만드는 다양한 해석의 영역, 오독이란 말조차 불필요한, 자유롭고 풍부한 이야기의 세계를 사랑한다.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그림책일 수 없다. 그림책 안에서만이라도 잠시,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 289p, 오독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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