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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마다 언젠가부터 자꾸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클레어 키건의 소설들인데, 마치 영화 포스터같은 표지에 얇은 분량의 가벼운 책이 많은 사람들이 손에 들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많이 읽히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읽게 된 그녀의 첫 책 <맡겨진 소녀>.
맡겨진 소녀 책 리뷰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에서 오래 전부터 주목받는 작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미국 독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화제가 되더니 드디어 한국에까지 넘어온 듯 하다. 흔히 많이 하는 책 광고에 넘어가는 편은 아니지만, 뉴욕 <타임스>에서 21세기 출간된 최고의 소설 50권 중 하나에 들었다고 하니 과히 심상치 않은 파급력인 듯.
출판년도 : 2023
출판사 : 다산책방
저자 : 클레어 키건
개인적으로 이렇게 호기심을 자아내는 표지를 좋아한다. 일단 100페이지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은 더욱 마음에 들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분량이겠지만, 잘 읽지 못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부담이 적어서 좋다. 직접 읽어보니 엄청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내러티브 형식에 문체도 술술 읽혀서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은 느낌이다.
인생 처음 관심을 받은 소녀 찬란한 여름 이야기
무심하고 폭력적인 아빠,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고 생활하느라 지친 엄마 밑에서 소녀는 다정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다. 언니들과 동생 그리고 곧 태어난 막내까지. 빠듯한 생활 속에서 부모님은 잠시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소녀에게 맡긴다. 방학동안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갑자기 전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게 된 소녀는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엄청 살갖진 않아도 아이의 시선에서 다정하게 대해주는 킨셀라 부부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소녀는 점차 안정과 평온을 찾는다. 그리고 낯설었던 새로운 집의 일상에도 점차 익숙해진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려고 하던 어느 날 집에서 전화가 온다.
아이의 시선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연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녀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다소 미숙한 아이는 돌아가는 상황은 온전히 알지도 못 하고, 때론 일부분만 보고 상상으로 꾸며내기도 한다. 그런 순수한 아이의 눈에서 바라본 킨셀라 부부는 자신의 부모님과 달리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생전 다정함 커녕 애정조차 느껴보지 못한 아이에게 이러한 사랑은 매우 낯선 것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황하며 집으로 가고 싶다고도 말하고, 때론 불편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솔직하고 미숙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킨셀라 부부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예전에는 미처 누리지 못했던 평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게 담겨 있어서 매우 잘 와 닿는다. 읽으면서 소녀가 따뜻함을 느끼는 모습에서 덩달아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달까.
한편으로는 <빨강 머리 앤>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거칠었던 어른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아이가 따뜻한 어른을 만나 마음을 회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라 뭔가 비슷했달까. 하지만 앤과 다른 점은 소녀는 자신을 우울하게 했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좀 더 애잔하고 슬픈 느낌이 소설 전반을 감싸고 있다.
과하지 않은 묘사가 주는 몰입과 감동
이야기는 엄청난 사건을 서사로 따라가지 않고, 오롯이 소녀의 감정과 시선에만 집중한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소녀가 있는 곳이 평화로울 뿐 실제 당시 북아일랜드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 같은 이야기는 짧게 비추고 오롯이 소녀의 일상만을 천천히 따라갈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조용하고 침착했던 킨셀라 부부의 성격처럼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하다. 하지만 마지막 즈음에 급격한 감정의 폭발로 짙은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저자는 굉장히 섬세한 필치로 그 미묘한 감정선과 상황들을 따라가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단어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과하지 않은 묘사에서 더 확실한 상황과 감정이 묘사되고, 더욱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다. 가보진 않았지만 왠지 영화에서 본 듯한 아이랜드의 스사한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듯. 그들의 상황과 배경이 참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분량으로도 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왜 이 작가가 주목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적은 분량에 쉽게 잘 읽히는 문체도 좋았지만, 그보다 섬세한 필체와 연출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맡겨진 소녀>. 책을 읽고나서 영화도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한 번 봐보고 싶다. 과연 책과 얼마나 비슷하고 다르게 묘사되었을지. 더불어 그녀의 또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싶다는 생각. 아니 전부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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