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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를 완독했다. 사실 앞서 포스팅했던 <채식주의자>보다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뭔가 빠르고 단숨에 읽기 보다 찬찬히 글귀를 음미하며 읽고 싶었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한 챕터씩. 그리고 한 이야기씩. 그렇게 조금씩 읽어나가다보니 대략 3주 만에 책을 다 읽게 된 것 같다.

 

 

 

소년이 온다 책리뷰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오고 전국이 한차례 폭풍우같은 성화에 휩쓸리던 시기에 그녀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나 또한 어쩌다보니 그 대열에 합류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흔히 한강의 작품 중 처음 읽을 것으로 꼽는 책이 바로 <소년이 온다>였다.

 

소년이-온다-책-표지

출판년도 : 2014
출판사 : 창비
저자 : 한강

 

사실 한강 작가의 책은 대체적으로 어두운 역사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분량임에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니 글은 쉽게 읽히는 데 내용은 빠르게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시적이고 은유적인 글귀가 강해서. 그런데 <소년이 온다> 또한 그랬다. 읽기는 쉬운데 뭔가 문장이, 단어가 너무 심오해서 자꾸만 멈추고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줄거리

 

 

중학생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같은 집에 살던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형, 눈나들과 함께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에 매일 수십, 수백며의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초를 밝혀 위로하는 일을 하면서, 그는 친구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기억에 죄책감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그러 던 어느날 계엄군이 상무관에 들이닥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엄마와 상무관에 함께 생활했던 형 누나의 말을 듣지 않고 도청에 몰래 남아 시민군에 합류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한편 당시 함께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경찰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에 시달리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치욕스러움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무력가에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말조차 꺼내는 것이 두렵고 힘겨웠던 그들은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동호와 스쳤던 인연들과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광주의 아픔을 생생히 그린 작품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당시 상황과 그 이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 출신이였고, 간접적으로 그 사건을 경험한 한강 작가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생생하게 담고 있는데, 굉장히 정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더욱 생생하게 당시를 느끼게 만든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아서 나에게 민주화 운동은 학교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한 간접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접했던 광주 민주화 사건이 가장 강렬하고 진하게 남아있다. 그 후 강풀의 <26년>, <택시운전사> 등 그 당시를 기억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는데, 소설로 읽게 되는 것은 처음이였다.

 

읽기 전부터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너무 무겁고 읽기 힘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초반부터 차분하게 진행되어서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소설 곳곳 그리고 중반부부터는 굉장히 끔찍한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어서 마치 몸에 뭐가 기어가듯 소름이 계속 끼칠 정도로 읽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읽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광주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보면 당시의 끔찍한 참혹상이나 복수극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소년이 온다>는 시작부터 모든 전개가 새롭고 전혀 달랐다. 생각지 못한 시선과 방식으로 연출된 장면들은 마치 실제 그 상황을 보는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그들의 참혹한 상황과 심정이 절실히 와 닿아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된 동호였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단순히 동호만이 아닌 그의 친구 정대. 그리고 누나 정미와 상무관의 형과 누나들. 그들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진행되면서 더욱 상황은 기가막히고 마음은 사무치게 아리는 기분이다.

 

 

 

한강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먼저 읽을 것을 추천

 

 

그들의 말처럼 마치 꿈같기만 한 그 당시의 잔혹한 일들이 도대체 왜 벌어져야 했는지. 아직도 난 모르겠다. 정치고 뭐고. 그저 끔찍할 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던 것은 순수했던 동호의 모습. 그리고 함께 이유도 모른 채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고 자신을 찌르는 나라와 싸운 이들에 대한 기억들이 현재까지 남아 기억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솔직히 취저를 논하기에는 소설의 주제나 내용이 너무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아직 모든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읽고 나자 이 책이 나의 가장 베스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한 호흡으로 소설의 처음과 시작을 읽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원체 글을 한 번에 진득하게 읽지 못하는 성정때문에 여러 번 끊어서 오랫동안 읽어야 했는데, 그래서 여러 인물들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살짝 아쉬웠다. 비록 한 번에 읽진 못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문장들을 내용을 곱씹으면서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지금보다는 더 깊은 묵직한 감동이 다가올 듯.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보다 이 책을 먼저 권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사실 <채식주의자>는 뛰어난 작품임에도 호불호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무조건 추천을 하긴 어려운데, <소년이 온다>는 누구든 꼭 읽어보라고 많이 추천하게 될 것 같다.

 

그만큼 작품 자체가 너무 좋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성이나 그것을 보여주는 연출 또한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다소 어둡기 때문에 쉽게 우울해지는 분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 한강의 작품 중 꼭 하나를 읽어보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강추한다.

 

 

마음에 남는 글귀들

 

 

그 과정을 어머니는 진심으로 미안해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집안 사정이 나빠지지 않았다 해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 했을 것이다. 결국 그 앳된 학생들의 스크럼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것이다.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버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p.87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p.89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p.102-103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낭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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