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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 모든 은희에게 전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독립영화 한편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벌새>라는 독립영화인데요.

 

영화<벌새>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8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최총 공대된 이후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이후 굵직한 수상들을 휩쓴 화제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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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독립영화를 좋아해서 자주까지는 아니여도 보물을 발견하듯 조심스레 살금살금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이미 보기도 전에 너무 호평이 자자해서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 내용에 스포가 있습니다.

벌새

개봉 2019.08.29  |  한국  |  138분  |  김보라 감독  박지후, 김새벽, 정인기

 

1994에 살고 있는 14살 은희(박지후)는 서울 대치동에서 떡집을 하는 부모님과 오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바람을 피면서 집에서 권위적으로 구는 아빠, 일상에 지쳐 무기력해진 엄마는 막내 은희는 관심에도 없습니다.

거기다 서울대를 목표로 압박감에 시달린 오빠는 툭하면 은희를 때리고, 공부보다 남자친구에게만 관심이 많은 언니는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으나 꼭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듯한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은희에겐 남자친구 지완이도 있고, 함께 한문수업을 받는 단짝 친구 지숙이도 있습니다. 거기에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후배도 있고 말이죠.

비록 집안에서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들도 잠시 행복했던 은희. 하지만 갑작스럽게 이 모든 관계에 균열이 생기자 윤희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윤희는 새로 바뀐 한문 김영지 선생님(김새벽)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녀는 항상 어딘가 헝공을 응시하듯 멍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독특한 분이지만, 윤희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정말 필요한 조언을 적절히 해주는 찐어른인데요.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아..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영지 선생님 덕분에 은희는 조금이나마 따뜻함과 위안을 얻습니다.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때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믿고 의지했던 선생님은 어느 날 편지 하나를 남기고 떠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다음에 만나면 다시 얘기해줄게"

영화 속에서는 실제로 1994년에 벌어졌던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영화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보니까 마음이 아프긴 하더라구요.)

 

그 길로 항상 버스를 타고 다니던 언니가 생각나 서로 친근하게 굴지도 않던 사이임에도 울먹이며 가족에게 전화하고 걱정하는 은희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복잡미묘한 관계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였어요.

 

다행히 언니는 무사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를 유일하게 지지해주고 위안을 준 선생님이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죠. 진짜 마음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아니.. 영화에 너무 과몰입한 듯)

 

영화를 다 보고나니 동일한 시대도 같은 사건도 겪은 적 없지만 14살 은희의 성장기는 왠지 내가 겪은 듯한 기시감이 들어서 무척 공감이 되더라구요.(그래서 더 몰입되었는지)

내맘같지 않게 자꾸 엇갈리는 관계들, 그 와중에 갑자기 뜨금없이 생긴 혹, 관심받고 싶은 마음.

 

아직은 미성숙하고 모든 것이 예민한 시기에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들이 답답하게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려고 하는 은희가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였어요.

 

“은희야, 너 이제 맞지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싸워

알았지?”

 

그래도 은희에게는 진짜 좋은 어른인 영지샘이 잠시나마 곁에 있었던 덕분에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한 명만 있어도 사람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생각이 나네요.)

1초에 90번 날개짓을 하는 벌새처럼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은희에 모습에 괜시리 찡해지고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감독님 인터뷰에서 보니까 누구나 한번쯤 그 시절 겪었을 보편적인 감성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덕분에 이 작품이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세상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나만 홀로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그 시절을 겪었던 모든 은희에게 전달하는 먹먹한 영화 <벌새> 한 번쯤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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