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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부스 갤러리에서 성률 작가의 개인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인기가 많았던터라 연장까지 되어서 꼭 기간 안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되서 결국 못 같다. 대신 성률 작가의 만화를 읽어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기로 한다. 책의 제목은 <여름 안에서>.
 

 
 

여름 안에서 서평

2020년에 문학동네에서 발간된 <여름 안에서>는 한국형 그래픽노블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나왔다. 여기서 그래픽노블이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만화와 소설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과 일본 만화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출간되는 이 장르는 굉장히 레이아웃과 스토리가 복잡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게 특징이다.
 

여름-안에서-책표지
출판년도 : 2020
출판사 : 문학동네
저자 : 성률

 
작가적인 개성이 물씬 들어나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인데, 다소 구조 때문인지 스토리가 진지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것. 술술 읽히고 빠른 전개와 연출력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히 맞지 않는 장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보석같은 작품들이 있어서 종종 찾아 읽게 된다.
 
이번 성률 작가의 <여름 안에서>는 다행히도 그렇게 빼곡한 연출은 아니여서 한결 읽기는 편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여름에 앓은 뜨거웠던 성장통의 기억을 갖고, 우정에 관한 두 편의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표지부터 여름 특유의 쨍쨍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물씬나서 기대감을 한껏 고무시켰다.
 
 
 

소녀와 소년, 우정에 관한 두 이야기

 

 
책에는 두 가지의 단편을 통해 어린 소년, 소녀들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먼저 <여름 안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던 주찬의 이야기다.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고양이 치치가 떠나고, 주찬이는 치치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그 때 갑자기 소녀가 등장하고, 둘은 함께 모험을 떠나며 색다른 추억을 만들게 된다.
 
두번 째 단편은 <파노라마>. 따돌림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 친구 수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해리는 일본 오키나와의 바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왠지 수미와 닮은 일본 소녀 치에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난 치에의 치근덕이 귀찮았던 해리. 그러나 따돌림을 당하는 치에를 보며 수미의 옛 모습이 겹쳐보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우정

작가는 물을 가득 머금고 자연스럽게 번지는 수채화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재료를 가지고 굉장히 익숙한 스토리와 과감한 연출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오히려 투명감이 넘치는 수채화로 그려졌기 때문일까. 쨍쨍하면서도 청면한 여름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솔직히 스토리는 청춘물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상가는 스토리와 전개여서 그렇게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첫 번째 스토리는 무난하긴 했는데, 두 번째를 살짝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은 느낌. 환상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조금 난해하고 뜨끔없다고 느껴져서 살짝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였던 점은 역시 그림. 엄청 디테일한 묘사는 아니였는데, 과감하게 특징을 잡아내서 그려서 그런지 굉장히 시원시원한 그림체였다. 거기다 굉장히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연출력이 인상적이었는데, 오히려 스토리보다 그런 연출력에 더 눈길이 갔다. 
 
비교적 최근 일본국제만화상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연출적인 부분이 큰 점수를 얻지 않았을까. 이미 그림 면에서는 개인전을 열만큼 무르익은 느낌이지만 스토리면에서는 앞으로 좀 더 보강이 필요할 듯 하다. 그래도 이 작품이 저자의 첫 책이라고 하니, 앞으로 혹여 출간되는 작품에서는 좀 더 발전되어 나아가지 않을까 살포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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