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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한 문학동네의 단편 만화집에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웹툰 <연민의 굴레>를 굉장히 재밌게 본 독자로서 혹시나 신작이 나온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5명의 젊은 만화가들이 함께 '일탈'과 '땡땡이'라는 주제로 그린 5편의 단편 작품들을 엮은 책이더라구요.

 

 

 

<그 길로 갈 바엔> 책 소개

긴 호흡으로 끌고가는 장편 만화도 쉽지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짧은 한정적인 분량 속에서 세계관과 더불어 기승전결을 모조리 담아야 하는 단편이야 말로 진짜 쉬운 작업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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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지만 5가지의 이렇게 각양각색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이 독자로서는 너무 신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몰입도 높은 연출에 감탄해버렸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너무 잘 그리는 작가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말이죠.

 

사실 재활용 작가 외에는 모두 처음 보는 작가님들이였지만, 5편의 작품 중 하나도 빠짐없이 엄청 흥미로웠고 재밌게 읽히더라구요. 덕분에 새로운 4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1.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고1 도경은 바로 한 학년 위의 오빠 도영의 여자친구에게 대신 이별 통보를 하기 위해 다른 학교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오빠 여자친구의 여동생 성하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착한 언니를 향한 일방적인 통보식 이별에 화가난 여동생은 이별을 통보할 본인이 직접 와서 담판을 지으라고 요구하고, 오빠에게 용돈을 받은 도경은 철저히 그녀의 행보를 막으려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진실이 밝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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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팬카페 : https://cafe.naver.com/dusalsdmlrnffp
웹툰 <연민의 굴레>, <도미노파이>를 연재.

 

웹툰 <연민의 굴레>를 떠오르게 했던 작품이였습니다. 작가의 특유의 밝고 에너지넘치는 학원물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단편이였는데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맛깔라는 연출과 노련한 개그감이 재활용 작가의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스토리에 몰입해서 보면서 중간마다 펼쳐지는 허를 찌르는 개그 연출이 완전 딱 제 취향이였습니다. 

 

<연민의 굴레>를 너무 재밌게 보고 애정했던 작품이였던 지라 추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이렇게 멋진 단편도 내보이셨으니 앞으로 또 재미난 작품들로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2. 명왕성의 기억

1여 2남의 K-장녀 김명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 동안의 쌓인 동생들과의 차별에 화가 나 그만 뛰쳐나오고 맙니다. 그 길로 수학여행 때 가고싶었던 놀이공원에 와 술을 먹고 한껏 취해 벤츠에 드러눕게 됩니다.

 

그때 이상한 우주복을 입은 즉석사진 알바생이 그녀에게 다가옵니다. 그는 의도치 않게 김명희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서서히 공감하며 둘은 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김명희에게 명왕성 이야기를 들려주죠.

약국-작가의-작품들-표지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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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BADPHARMACY
웹툰 <언럭키 맨션>, <죽여주는 복수선언>, <전야제> 연재. 비수도권 탐방기<지역의 사생활99> 시리즈 참여해서 단편 <키르케고르와 법구경> 출간.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 느낀 점은 섬세하고 뛰어난 작화였는데요. 아직까지도 이런 집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K-장녀에게 향한 말도 안되는 가족의 기가막힌 행동에 같이 분노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도 알바하다가 얼떨결에 명희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우주복 인물의 능청에 또 웃게되면서 문득 단만극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개나 구성이 깊이가 있으면서도 독특했습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과학 기사 중 '저승의 왕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를 읽고 명왕성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하더라구요. 소재와 이야기가 참 잘 어우러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토하시는 대로

신탁으로 뭔가를 토해내는 신력이 있는 무녀와 그녀가 신탁을 잘 해내도록 돕는 동생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신들을 착취하는 이모가 불러온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는 일을 합니다. 매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탁을 해야하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는 언니와 달리 동생의 언니의 그런 능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성인이 되는 생일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죠. 그래서 이모는 얼른 생일이 오기 전에 하나라도 더 빨리 신탁을 내리도록 지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의뢰도 하지 않은 알을 토해내게 됩니다. 예기치 않게 내려진 신탁에 대한 결과에 이모는 당황스러워하고 그때부터 서서히 세 사람 앞에 일상이 균열을 드리우게 됩니다.

웹툰-짝사랑-동아리

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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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짝사랑 동아리> 연재, 단편, 일러스트 작업 등 다양하게 활동 중.

 

무녀와 토해서 신탁을 내리는 능력, 고아, 친척의 착취 등 전체적으로 굉장히 우울하면서도 기묘한 스토리라 그런지 분위기가 참 독특한 단편이였어요. 그런데도 이야기의 밀도나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선에 이끌려 정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요. 마지막에는 아무래도 단편의 특성상 짧다보니 극적인 반전을 주기 위한 연출이였을텐데 뭔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알고 보니 원래는 3부작으로 조금 긴 내용의 줄거리를 구상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분량이 초과될 것 같아 줄이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내용이 변경될 수 밖에 없었던 듯 합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더욱 강렬한 엔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4.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세요

꿈은 우울에게 곧 지배되어질 세상에서 떠나가는 이들을 뒤로 하고 남편 희망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우울로 뒤덮여진 세상을 걸어나가면서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씁쓸하게 회상하죠.

 

남편을 찾기 위해 유일하게 그의 존재를 아는 차기 대선 우승 후보인 우울에게 갑니다. 하지만 그는 남편의 존재를 알려주는 척 꿈을 조롱합니다. 그리고 둘은 이 세상이 왜 무너지게 되었는가 마지막 깊은 담론을 나누게 됩니다.

법정스님의-다잉메시지-포스터

각종모에화
트위터 : https://mobile.twitter.com/everymoewha
SNS 중심으로 단편만화 공개와 더불어 전시활동.

 

초반에는 마치 사회 문제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점차 내용이 깊어지고 몰입할수록 인간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본질적인 근원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참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인간을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의인화해서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연출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더라구요.

 

작가의 후기를 읽어보니 더욱 어떻게 이런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독보적인 생각과 깊이를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두 인물에 대해 서로 혐오하는 엄마와 딸 같은 느낌을 떠올렸다고 하는데요. 그 이야기를 읽고 보니 진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원래 작가는 SNS에서 짧은 단편 만화 위주로 활동을 많이 했다 보니까, 이번 50페이지 단편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번 단편은 마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뛰어난 영상미가 느껴지는 듯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와 여운이 상당하더라구요. 작가의 다음 작품도 참 기대가 되네요. 빠른 시일 내에 또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5. 추억의 왕

주인공 종림은 적당히 일하며 퇴근하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플레이스트와 상상들을 하며 버티는 평범한 직장인인데요. 어느 날 회사 창립일 기념행사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게 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비게 됩니다.

 

저녁 약속까지 남은 시간 4시간. 그녀는 뭐할지 고민하다가 불연듯 우연히 발견한 회사 근처 곡몰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의외의 새로움을 발견한 그녀는 다양한 상상 속에서 생각보다 즐거운 골목 탐방을 하기 시작하면서 밀려드는 감정과 생각들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양지-작가의-작품들

하양지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etermas
웹툰 <우리는 시간문제>, <춤추는 도련님> 연재. <이런, 용기>와 <래빗홀> 스토리 담당. <지역의 사생활99> 시리즈의 단편만화 <정순전>과 <안녕이 오고 있어> 출간.

 

5편의 작품들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엄청 특정한 사건도 극적인 연출도 나오지 않는 이 단편에는 종림이 우연히 새로운 길로 걸어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떠올리는 생각들을 그저 따라가면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 종림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서 새로운 감정과 기분전환을 겪었듯이, 읽는 동안 그녀를 통해 함께 여러 생각의 전환을 해볼 수 있어서 참 편안했어요. 내 머릿속을 보는 듯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녀의 뜨끔없는 생각들에 묘하게 공감을 갖게 되면서 말이죠. 왠지 MBTI의 N형들의 머릿속을 보는 것 같달까요.

 

이렇게 일상적인 소재로 평범하게 별 사건없이 흘러가는데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고, 이런 구성을 자연스럽게 마무리지은 작가의 역량에도 엄지척을 내밀고 싶네요.

 

 

 

퀄리티 높았던 5편의 단편들

<그 길로 갈 바엔>은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2편인데요. 2편을 생각보다 재밌게 읽고 나니 1편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문학동네라는 나름 독보적인 퀄리티를 보여주는 출판사에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단편 모두 퀄리티나 스토리적인 부분이 정말 만족스러웠거든요. 

 

 
그 길로 갈 바엔
『여자력女自力』으로 첫번째 단행본을 선보였던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가 돌아왔다. 두번째 단행본의 주제는 ‘일탈’과 ‘땡땡이’. 가보지 않은 길로 내딛는 한 걸음, 작은 세계와 일상을 벗어나는 한 걸음들이 모여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쉬운 길도 헤매는 세상 속에서 늘 가던 뻔하고, 쉽고, 빠른 ‘그 길’로 가지 않은 다섯 주인공들. 경쾌하고 대담한 발걸음으로 조금은 돌아가기를 택한 그들의 유쾌하고 신비로운 여정을 따라가보자. 작년 첫 번째 단행본 『여자력女自力』으로 시작한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은 출판만화의 진흥과 단편만화의 매력을 추구하는 시리즈다. 웹툰이 장편 대서사시, 화려한 풀컬러, 끝없는 스크롤 등 무한한 자유와 대규모의 세계를 자랑한다면 테마단편집의 출판만화들은 ‘한정된 세계’ 속에서 가능한 또다른 재미와 감동을 만든다. 50~70페이지 내외의 짧은 스토리, 흑과 백, 148*210mm의 판형. 분량부터 크기까지 정해진 세계 속에서 오히려 창작자들은 눈부신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하는 이야기라면 더욱 능란하게, 새로운 이야기라면 더욱 과감하게. 이처럼 보석 같은 단편을 모은 테마단편집 시리즈가 흥미로운 테마, 새로운 만화가들과 함께 돌아왔다. ‘초능력’이 테마였던 『여자력女自力』에 이어 두번째 단행본의 테마는 ‘일탈’. 굴지의 명작, 웹툰 〈연민의 굴레〉의 재활용 작가는 노련한 개그로 형제자매의 땡땡이를 그렸다. 오빠의 이별 통보를 대신 전달하러 나선 도경과 언니를 향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동생 성하가 언니와 오빠를 대신하여 좌충우돌 이별가를 부른다. 『언럭키 맨션』 『죽여주는 복수선언』 『전야제』로 장르를 불문하고 다수의 작품을 그려온 약국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탈출한 K-장녀’라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단편을 통해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의 외형 등까지 새로움에 도전했다. 웹툰 〈짝사랑 동아리〉와 각종 단편, 패션 컬래버레이션 일러스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서글 작가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무녀와 그의 동생의 탈출기를 그렸다. 특정한 개념이나 사물 등을 의인화하는 단편만화로 유명한 각종모에화 작가는 ‘꿈’과 ‘우울’을 의인화한 단편만화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했다. 올해 봄 『안녕이 오고 있어』로 사랑받은 하양지 작가는 특유의 문학적 감성으로 도시 탐방기를 그렸다. 늘 지나쳐오기만 했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선 주인공이 만난 낯선 풍경들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저마다의 다섯 이야기를 묶은 단행본의 제목은 『그 길로 갈 바엔』. 가보지 않은 길로 내딛는 한 걸음, 작은 세계와 일상을 벗어나는 한 걸음. 그 경쾌하고 대담한 걸음들이 모여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쉬운 길도 헤매는 세상 속에서 늘 가던 뻔하고, 쉽고, 빠른 ‘그 길’로 가지 않고 조금은 돌아가기를 택한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저자
재활용, 약국, 서글, 각종모에화, 하양지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10.13

 

그 때문에 1편 또한 얼마나 잘 만들어졌을지 참 기대가 되더라구요. 5가지의 다양한 스타일과 전혀 다른 장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단편집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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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심도 깊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해외의 그래픽노블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느껴지구요. 오히려 연출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국내 작품이 더욱 재미와 몰입도가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