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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고, 문득 그녀의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영상과 책 속에서 살짝 들려준 여행 에피소드가 무척 궁금해져서, 2013년에 출간된 오래된 에세이 책 한 권을 집어들었습니다.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책소개

아쉽게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현재는 절판된 상태라 e북이나 중고, 또는 도서관에서 빌려야 볼 수 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행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아주-예쁘게-웃었다-책표지

여행을 좋아하지만 늘상 자주 떠나지 못하는 탓에 대신 여행 에세이를 보며 마음의 아쉬움을 달래곤 했는데요. 멋진 사진이 담겨 있는 책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일러스트가 담긴 책이 뭔가 와 닿고 좋더라구요. 마치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장 자크 상뻬'를 떠올리게 하는 심플하면서도 당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봉현 작가의 그림이 곁들어져서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치유하고자 막연한 떠남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갑작스레 떠나버린 서울. 그렇게 홀로 2년간 유럽과 중동, 인도를 떠도는 리얼한 여행자의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사 올 때면, 나는 그 물건에 누군가의 손때나 흔적이 묻어 있고 버려진 것 특유의 초라함이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깨끗이 닦고 조물조물하다 보면 새로운 물건 못지않게 반짝거리는 것 같다. 손을 타서 반질반질 광택이 난달까. 그런 물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듯이 끝까지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가난하고 외롭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내 그림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위안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그림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가끔 세느 강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한다. 그래, 괜찮아. 나는 살아 있을 이유가 충분해. 잘 살아가고 있어.

 

다시는 서울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떠나온 유럽이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수록 그녀는 다시 겉잡을 수 없는 외로움과 무기력감을 느끼도 또 다른 도시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이동해 버립니다. 때로는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콕하고 있다가도, 어느 날에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끼어 바라보다가, 또 어떤 날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추억을 만듭니다.

 

 

 

장기간 깊이 느껴본 다양한 여행지

여행을 떠나보면 막상 새롭고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또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난관들은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오곤 하는데요. 작가는 여행에서 느끼는 모든 생생한 감정과 자유로운 시선들을 솔직하게 글로 담아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해서 읽는 순간 마치 내가 그 곳에 그 감정을 느끼고 앉아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을 불어일으킵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다. 얼핏 보면 비슷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햇빛 따라 바람 따라 기분 따라 다른 풍경이 된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림이로든 사진이로든 남겨놓고 싶지만 백만 분의 일도 담을 수 없다. 나만이 찰나의 순간 느낄 수 있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세상은 참 아름답다.

사람은 결국 똑같은 존재였다. 눈이 파랗든 갈색이든, 머리카락이 노랗든 검든, 영어를 할 수 있건 없건, 나이가 지긋하건 어리건, 함께 이곳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추억을 나누고 인연이 된다.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검은 눈동자와 갈색 피부를 가진 사막의 아이는 자기가 사막에서 태어났음을, 한국어와 아랍어를 배우고 말하며 살아갈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을까. 지금 내가 사막에서 만난 이 작은 아이가 사막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이 사막에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벌이나 나비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안다.

 

단순히 여행을 즐길 마음으로 떠났으면 느끼지 못했을 단편적인 여행지의 모습을 직접 살아보면서 제대로 느끼고 경험해보았기 때문인지 더욱 장소에 대한 깊이가 가득했는데요. 이렇게 자유롭게 정처없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다녀볼 수 있는 경험을 해낸 것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언제가는 끝이 오고, 또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시간도 올테니, 분명 이 순간들의 고통과 행복 역시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귀한 시간일테죠.

 

 

 

장기간 세계여행이 남긴 것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린 첫 장을 펼치고 백지에 삶을 써내려 간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일기장 위에 흔적을 남긴다. 슬프건 행복하건 모두 일기를 쓰며 나이를 먹어간다. 백지는 어느새 검게 물든다. 정신없이 수많은 것을 적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종이가 몇 장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데, 아직도 적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지막 페이지를 채워야 할 때를 맞이한다.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

별것 아닌 일상도 여행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잠이 드는 하루하루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가 소중히 여길 수만 있다면 외로움도, 상처도, 허전함도 모두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분명 떠나기 전에는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겠다 단호히 선언하지만, 그녀는 2년간의 여행을 하면서 결국 돌아가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세계여행을 오래 했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덕분에 마음은 단단해졌고, 어디서든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게 된 것이죠.

 

 

 

여행을 기록으로 남겼을 때의 좋은 점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한껏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글과 그림이라는 형태로 나만의 여행기를 남겨보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도 아니기에 이런 출판의 형태로 남길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시 그 당시 새로운 곳에서 느꼈던 감정과 시간들의 날것을 생생하게 느껴보기에는 충분한 추억거리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봉현이 쓰고 그린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십대의 저자가 여행을 떠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일러스트와 함께 담아낸 책이다. 2년여 간 유럽 일대와 중동, 인도 등을 여행하며 방랑한 저자의 쓸쓸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파리, 피니스테라, 카미노, 인도 등을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달라져있었는지 돌아보고 있다. 낯선 베를린에서 보낸 별다르지 않은 나날들, 중동의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던 시간, 맨발로 인도를 걷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아주 예쁘게 웃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금은 강해지고 자기다워진 자신을 마주한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세상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일뿐이라는 깨달음은 청춘의 혼란 속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앞으로 경험하게 될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
봉현
출판
푸른지식
출판일
2013.06.15

 

▼ 다양한 시선이 담긴 책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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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계획으로 깊이 느껴본 낯선 여행기가 궁금하시다면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