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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다니구치 지로 단편 시리즈 읽기. 이번에 읽은 책은 <겨울 동물원>이라는 작품인데, 단편이 흔히 그렇듯 제목은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따온 것 같다. <산책>과 다르게 조금 더 옛느낌이 난다 싶었는데, 무려 2008년도 작품. 국내에는 동시에 출간되는 경우가 많아서 비슷한 시기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이 작품이 훨씬 오래 전에 나왔다.
 

 
 

겨울 동물원 서평

<겨울 동물원>은 진로를 고민하던 청년이 친구를 통해 우연히 도쿄로 상경해서 만화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면서 만화 업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나만의 창작을 하고 싶은 열망, 그리고 사랑과 이별 등 애틋하고 순수하 사랑이야기가 덧입혀진다.
 

겨울-동물원-책표지

출판년도 : 2014
출판사 : 세미콜론
저자 : 다니구치 지로

 
읽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공은 저자의 젊은 시절과도 꽤나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1960년대에 교토에서 섬유 회사를 다닌 것과, 도쿄로 가서 만화가 어시스턴트 생활을 것 등. 기본부터 설정과 배경이 꽤나 비슷해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꿈을 위해 상경한 한 청년의 성장기

1966년 12월 교토의 한 직물 도매상에서 일하고 있던 하마구치는 직물의 패턴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것과 달리 전혀 관심이 없는 잡무를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유일한 취미는 휴일에 홀로 동물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시집갔던 사장의 딸이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온다.

 

 

사장은 딸이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을 알고 어딜 나갈 때마다 하마구치에게 감시를 시킨다. 종종 함께 다니면서 우연히 하마구치의 그림을 본 사장 딸은 굉장히 반색하며 작품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친근해지고, 어느 날 사장 딸은 눈 오는 겨울날 동물원에 함께 가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그녀는 연인과 도망쳐 버린다.
 
이로 인해 회사에서 곤란해진 하마구치는 친구의 권유로 도쿄로 올라와 유명 만화가의 어시스턴트로 취직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만화에 열망이 있었던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작업에 열중하면서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병약한 한 소녀를 만나 풋풋한 첫사랑을 하게 되는 동시에, 만화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게 된다.
 
 
 

쓸쓸하고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

1960년대가 배경이라서 그런지 옛날 사랑과 청춘을 그린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사랑의 도피라던가, 불치병에 걸린 첫사랑, 상경해서 겪는 이야기들. 뭔가 요즘 시대에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그런가. 내가 겪은 시대가 분명 아닌데도 아련하고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읽고 나니 사랑 이야기가 주되게 흘러간 듯 하지만, 창작자로서의 고민들도 가득 엿보인다. 만화가 지망생으로서 다들 열심히 어시 일을 하면서도 틈틈히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데뷔. 언젠가는 해야될텐데 이대로 지망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자꾸 흘러 고인물이 되어가는 듯한 씁쓸함 등.
 
현재 꿈을 쫒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공감될 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이야기로 다뤄서 그런지 내용이 굉장히 잘 읽히고 주인공의 심경도 잘 와 닿아서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라서 그런가 더욱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쓰인 듯 하고 주인공의 감정선도 꽤 솔직하게 느껴지는데, 다른 저자의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스토리가 빽빽하게 들어찬 느낌이다. 제목처럼 겨울의 쓸쓸함이 가득 느껴지는 단편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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