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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읽으면서 점차 타카노 후미코의 만화 세계에 푹 빠지는 요즘이다. 저자가 출간한 책이 몇 편 안 될뿐더러 모두 단편집이라 가볍게 읽기 좋은데, 생각보다 내용이 난해하고 심오해서 또 엄청 막 잘 읽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연출 때문에 감탄하느라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이번에 본 책은 바로 <친구>라는 단편 작품집.
친구 서평
아무래도 저자의 나이가 있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작품 속 배경들이 꽤 오래 전이다. 일본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그 당시 풍경이나 분위기를 예상해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서 다소 새롭게 느껴지긴 한다. 특히 이 <친구>라는 작품에서 더욱 근대 당시 경제적으로나 여러 모로 혼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출판년도 : 2019
출판사 : 고트
저자 : 타카노 후미코
다만 아무래도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당시 우리나라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일본의 상황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져서 사뭇 복잡한 심경이 들긴 했다. 물론 작품은 작품으로서 봐야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라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금 그랬달까. 특히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는 더욱.
다양한 분량과 스토리의 매력적인 단편들
이야기는 크게 일본 친구의 이야기와 미국 친구의 이야기로 나뉘어서 진행된다. 여러 편의 단편들의 분량은 굉장히 제각각인데, 가장 큰 분량을 차지했던 작품은 바로 <봄 부두에서 태어난 새는>이라는 중편이다. 내용은 연극 '파랑새'를 준비하게 된 두 소녀의 이야기인데, 부유하지만 병약했던 친구가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 주인공 소녀는 은근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소 무시무시한 소문들이 들리고 주인공은 선뜻 소녀의 손을 잡길 두려워하는데,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제대로 된 공연을 해내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용기내어 손을 잡은 두 소녀는 멋지게 공연을 하며 우정에 대한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어나간다.
그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를 그린 <바비 & 허시>. 이상한 자전거를 타고 다녀 괴짜로 소문난 소년 바비와 직접 화내고 싸우는 소녀 허시의 자충우돌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인데, 특유의 과장스러운 동세와 연출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 다음으로 <데이비스의 계획>은 어른 여성의 부재로 인한 곤경과 결핍을 어린 소녀가 기지로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아주 과감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뛰어난 작가적 센스와 역량이 가득 묻어난 책
이번 작품은 특히나 저자의 개성이 가득 묻어나는데, 엄청 섬세한 드로잉으로 장면을 채운다기 보다는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확실한 선으로 인물의 동선이나 장면을 그려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로 감탄스럽다. 간혹 인체가 어색한 작가의 경우 작품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타카노 후미코는 엄청 정교하고 정확한 드로잉이 아님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재능과 센스가 뛰어난 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그랬기 때문에 단 몇 편의 단편만으로도 호평을 받고 '만화가의 만화가'라는 칭호를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연출같은 부분은 전작에서부터 굉장히 남들이 사용하지 않을 법한 신기한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런 부분이 더욱 두드러졌다.
분명 2D인 책으로 보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영상을 보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과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여서 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요즘 웹툰처럼 생생한 컬러가 아니라 온전히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 생생한 느낌이랄까.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는 듯 했는데, 후기를 보니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었다.
스토리의 재미보다 미적인 연출의 맛
솔직히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개인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재밌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아직까지 <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가 제일 재밌었던 듯. 간혹 내용이 굉장히 난해하고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있어서 살짝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전개로도 나아갈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뭔가 한 번 재밌게 보고 끝나기 보다는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두 번째, 세 번째 읽으면 좀 더 다르게 다가올 듯 한데, 신기하게도 바로 또 읽고 싶진 않다. 살짝 묵혀두었다가 잊을 즈음 읽고 싶어지는 책이랄까. 아마 그 때 다시 읽어도 또 감탄하면서 볼 것 같긴 하다.
장르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정말 다양한 시도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가라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남은 게 몇 권 없다. 현재로서는 2권 남았던가. 아쉽긴 하지만 아쉬운대로 열심히 남은 책들을 읽어보려고 한다. 과연 어떤 놀라움과 새로움을 안겨줄지 읽기도 전부터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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