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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보기 위해 다녀왔는데요.
올 여름이 오기 늦봄에 이건희 컬렉션을 보려고 몇 시간을 힘겹게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다행히 이번 전시는 얼리버드로 사전 예약을 한 덕분에 대기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도 줄이 많진 않아서 주말이 아닌 평일이나 오전 즈음에는 나름 여유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티켓을 끊고 입장을 했는데, 아이구야. 안에 사람들이 정말 가득해서 순간 잘못 온 줄 알았네요.
평일이라 여유로울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들을 시작으로 정말 입구가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하아. 편하게 보길 틀렸.)
코로나로 인해 워낙 오랫동안 원화전이 뜸하기도 했고, 왠지 이 전시가 꽤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구요. 아직 전시 초기라 더욱 많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현장 도슨트의 경우 하루 2회(2시, 4시)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현장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날은 안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오디오 가이드는 3,000원에 대여가 가능하니,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빌려서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시는 2023년 3월 1일까지 여유롭게 진행한다고 하니, 붐비는 것이 싫으신 분들은 조금 여유있게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중무휴로 신정과 설날 당일을 제외하고 모두 운영된다고 해요. 그리고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21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성인(만 24세~26세) 17,500원
청소년(만13세~23세) 15,000원
어린이(만 7세~12세) 10,000원
유아(만 4세~6세) 6,000원
경로 우대(65세 이상) 8,000원
이번 전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전시로, 유럽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빈 미술사 박물관의 귀중한 예술품을 볼 수 있는데요.
이번 특별전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회화, 갑옷, 공예, 태피스트리 등 총 96점이라고 합니다.
관람시간에 제한은 없어서 입장하는 순간 자유롭게 충분히 둘러보기 좋으며,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진도 가능합니다.
전시 관람 후기
10세기 스위스 북부 지역의 백작 가문이였던 합스부르크 가문. 1273년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오스트리아에 정착합니다.
이후 막시밀리안 1세 때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자들까지 왕실 결혼을 통해 부르군트, 스페인, 보헤미아, 헝가리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유럽의 변방이였던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립니다.
한 때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전성기 때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 지역과 아메리카, 아시아까지 확장했다고 하니, 당시 위세가 엄청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황제들의 갑옷과 무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갑옷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기능으로서의 보호복이 아니라, 남성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이였다고 합니다.
전투뿐만 아니라 패션으로서의 유행에 따라 갑옷의 형태도 다양하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갑옷들이야 말로 합스부르크 왕가를 대표하는 수집품이라고 하네요.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어요. 그리고 실제로 갑옷의 주름 형식은 옷의 실제 주름을 따왔다고 하니, 확실히 패션에도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사실 갑옷을 보면 매우 불편하고 무겁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친절하게도 옆에 이렇게 영상으로 자세하게 호기심을 해결해주더라구요.
생각보다 몸의 움직임에 용이하게 만들어서 저렇게 다리굳히고 막 팔 돌리기도 가능하더라구요. 무척 신기했습니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는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엄격한 가톨릭 교리 안에서 성장했는데요.
성격이 내성적이고 우울한 기질이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무능했지만, 예술품 수집가로서는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프라하로 수도를 옮긴 후 네덜란드, 이탈리아 화가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후원을 했다고 합니다.
폭넓고 깊은 예술적 안목이 있었던 루돌프 2세는 진기한 공예품, 학문적 성과물에 이르기까지 실로 정말 다양한 예술품들을 '예술의 방'에 전시했다고 합니다.
이때 수집한 공예품들은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의 공예관의 모태가 되었을 정도로 규모와 수준이 대단하였다고 하네요.
공예품들이 다 세밀하고 아름다웠지만, 특히 유독 인상깊었던 작품은 바로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인데요.
보석류 석판을 형태에 맞게 깍아서 조립한 것으로 '보석 모자이크'라고 불린다고 하더라구요.
저렇게 딱 들어맞게 맞춘 것도 실로 놀랍고, 더불어 정말 그린 것 같이 색깔이나 모양을 배치한 것도 확실히 뛰어난 장인의 솜씨가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소개되는 페르디난트 2세 대공. 이렇게 다음 황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초상화가 등장하는데 굉장히 멋지고 한편으로는 부럽네요.
우리나라 왕들의 초상화도 불타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멋있고 감동스러웠을까 더욱 아쉽습니다.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를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속하면서 자연스럽게 페르디난트 2세는 티롤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구교와 신교 모두에게 온건한 태도를 취한 덕분에 다양한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예술과 공예가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눈에 띤 공예품은 바로 야자열매인데요.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라고 알려지면서 16세기 유럽에서는 낯설고 경이로운 물건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야자열매 장식품이 총 6점 있는데, 여기서 3점을 합스부르크 가문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이라는 작품으로 구약성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이라고 해요. 아무래도 당시 가톨릭 국가였다 보니 성경과 관련된 그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사실 무교라 내용은 잘 모르지만,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모습과 눈에 확 띄는 색감이 이뻐서 찍어봤네요.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보시는 분들은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렇게 중간에 다음 전시관을 가기 전에 영상을 보면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 좋은데요. 아쉽게도 자리가 적은데 사람은 많다보니 서서 봐야했어요.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반적인 역사적인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보니, 굉장히 유익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서 보려니 오래는 못 보겠더라구요. 혹시 앉게 되신다면 꼭 다 보시길. 내용이 생각보다 유익했어요.(역사 공부하는 기분~)
아까 그곳은 못 앉고, 대신 앉은 곳. 확실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전시 중간에도 잠깐씩 쉬어주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구요.(넘 힘듦.)
예술의 후원에 아낌이 없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후원했던 예술가들의 모습을 굉장히 멋스런 영상미로 보여주어서 나름 흥미로웠어요.
이 그림은 미술관 천장에 그러져 있는 천장화라고 하더라구요. 다음번에 실제로 한 번 보게 되면 실로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꼭 보러가리.)
오스트리아 공주인 줄은 몰랐지만, 너무 유명해서 알고 있었던 그림인데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와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라고 합니다.
훗날 외삼촌이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사촌도 아니고 삼촌하고 결혼이라니 참.
그런데 다른 나라도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도 부유한 자신의 세력을 위해 근친끼리 결혼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대로 갈 수록 몸도 허약해지고 근친으로 인한 유전병으로 주걱턱이 길어지는 문제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림은 아니고 벽 한쪽에 붙여진 벽지. 당시 후원을 통해 얼마나 왕성한 예술활동이 이어져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였습니다.
페르디난트 3세의 동생인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베네치아, 프랑드르에서 수준 높은 명화 1,400점을 수집한 인물인데요.
수집품은 그가 죽은 후 빈으로 옮겨져 빈미술박물관 회화관의 토대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전시가 꽤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약간 헤매긴 했지만, 또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던 전시실.
빨간 벽지를 지나 어두운 전시관에 들어가니 어둠 속에 멋진 그림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주피터와 머큐리는 신인데요.(왜 세일러문이 생각나는지. 문 파워~)
나그네로 변장한 신들은 마을을 방문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유일하게 이 늙은 부부인 필레몬과 바우키스에게 정성껏 대접을 받게 됩니다.
붉은 옷을 입은 머큐리의 손에 든 포도주가 줄지 않는 것을 보고 부부는 신을 알아보는 장면이죠. 추후 연작으로 이들 신은 마을이 곧 쑥대밭이 될 예정이라며 부부를 마을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샤벳 그릇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너무 이뻐서 찍어봤어요. 화려하면서도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실제로 완전 순금으로 장식되 식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용도가 아니고 관상용으로 만들어진 것도 꽤 많더라구요.(뭔가 좀 아깝.)
17세기 플랑드르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발달한 꽃 정물화는 하나의 꽃병에 각기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모아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꽃다발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꽃병 아래 떨어진 시든 꽃잎과 곤충 등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플랑드르 출신인 브뤼헐 화가 가문을 통해 이 같은 꽃다발 정물이 유명해지게 됩니다.
다음 전시관에서는 꽤나 익숙한 얼굴과 이름을 볼 수 있었는데요. 중간에 이렇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전시 곳곳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모짜르트와 다른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의 음악들이 곳곳에 흘러나와서 걸어다닐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더라구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인데요. 그녀의 이름은 익숙치 않을지 몰라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라고 하면 아마 아~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아버지 카를 6세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내정이 불안하던 시기였다고 하는데요. 왕은 장녀인 마리아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했으나 갑작스레 사망을 하고 맙니다.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랜 기간 왕위 계승 전쟁을 치르고서야 그 지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여자이기에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프란츠 1세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요.
그는 정치에 큰 뜻이 없었던 관계로 사실상 마리아가 모든 국정을 운영하며 실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던 사이였는데요. 부부는 16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금슬이 매우 좋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근대화를 추진하며 대내적으로 근검절약하는 검소한 왕을 지향했는데요. 쉰브룬 궁전도 수수한 양식으로 개조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도 벨베데레 궁전으로 옮겨 전시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들 요제프 2세 때 벨베데레 궁전은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되었고, 그녀의 뜻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왕과 공동 통치를 시작했던 아들 요제프 2세.
근대화의 필요성에는 둘 다 동의했지만, 추구하는 방식이 달라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그의 개혁 정책의 주변의 반대에 부딪혀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화려한 황제들과는 달리 요제프 2세는 '일하는 황제'로 묘사되길 원해서 저렇게 다소 검소한 모습의 초상화가 완성되었는데요.
허례허식 없는 황제로서 국민 앞에 서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림에서도 잘 느껴집니다.(우리나라 대한제국 시절 의복과도 어딘지 비슷해보임.)
마리아 테레지아가 가장 아껴던 딸의 결혼식 연회장면이라고 하는데요. 자세히 보면 식탁 끝에 앉아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옛날 유럽에는 이렇게 왕족들이 직접 음식을 먹고 행하는 것들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요. 실제로 왕족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은 하인이 아니라 특별히 선발된 귀족들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잘 몰라도 너무 많이 들어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가 등장합니다. 원래 이름은 마리아 안토니아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16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결혼을 해서 프랑스 왕비가 되죠. 낭비벽이 심하고 허영이 가득했던 어른 왕비를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굉장히 싫어하며 온갖 추문을 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인데요. 일생을 악평에 시달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시 일찍 패션의 선구자로 활약했던 인물로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자인 프란츠 2세인데요. 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했을 때, 유럽 전역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요동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숙적인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프란츠 2세의 치세는 전쟁으로 얼룩져버리고, 연이은 패배로 많은 영토를 프랑스에 빼앗겼다고 하죠. 더군다나 그의 딸은 나폴레옹 1세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고 라인 지방 국가들을 통합하려 합니다.
이 때 위기를 느낀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영방을 결집해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한 후, 이름을 바꿔 프란츠 1세로 오스트리아 제국 초대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후 스스로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게 되죠.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킨 인물인데요.(거의 영조급.)
그는 민족주의가 급부상하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대를 열어 대외적 안정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도 빈의 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30년간 진행하며 현대화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로를 따라 도시 빈을 대표하는 건출물들을 짓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된 빈미술사박물관이라고 합니다.
많은 업적을 세운 그에게도 아픈 사랑 이야기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자베트 황후인데요.
사실 그의 언니와 약혼할 예정이였으나 요제프 황제가 동새 엘리자베트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명 시시로 불리는 엘리자베트는 자유로운 황경에서 자라왔다 보니, 엄격한 황실 예법에 적응하지 못했고, 점차 자녀 양육권까지 내주며,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점차 고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답답함을 벗어나고자 스위스 제네바를 여행하던 중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사이에는 유일한 아들이 한명이 있었는데요. 바로 루돌프 황태자입니다.
시집살이와 큰딸을 잃고 우울증이 심해진 엘리자베트는 아들을 할머니에 맡기고 아예 관심을 끊어 그는 꽤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거기다 기질적으로 내성적여서 아버지뿐만 아니라 황태자비 스테파니와도 갈등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우울증이 심했던 그는 내연녀 메리 베체라와 동반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러한 루돌프 제태자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로 재탄생되어 많이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황태자가 죽고 홀로 남은 스테파니 황태자비는추후 재혼해서 헝가리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러시아군에 의해 궁에서 쫓겨나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전시물은 놀랍게도 조선의 갑옷과 투구였는데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년 역사 속에 조선이 등장한 이유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으로 흘러갑니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조선은 서구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었는데요.
오스트리아 또한 오랜 경쟁관계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조선의 개항장이 필요했던 차, 양국은 수교를 맺게 됩니다.
수교 선물로 고종이 프랑츠 요제프 1세에게 조선의 갑옷과 투구를 보내게 되고, 이후 합스부르크의 수집품으로 등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던 이 수집품은 130년 만에 한국을 오게 되었네요. 오스트리아 전시물에서 우리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에 조금 감동적이였던 지점이였습니다.
아트샵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했지만, 전시 작품들이 꽤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서 꼼꼼히 보느라 거의 2~3시간 걸린 것 같네요. 이미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아트샵을 지나칠 순 없죠.
이번 전시 도록은 표지가 참 이쁘더라구요. 가격은 39,000원인데, 워낙 방대한 역사를 담고 있어서 관심있으신 분들은 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표지에 오직 아트샵에서만 판다고 되어 있네요.
도록 외에도 엽서나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는데요. 수입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정말 귀엽게도 이렇게 캐릭터식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당시 의상들을 표현했더라구요.
엄청 귀여웠떤 스티커에 가장 많이 눈길이 갔습니다.
역시나 빠지지 않는 에어팟과 아이폰 케이스.
이미 케이스를 산 터라 별로 크게 눈이 가진 않네요.
국립중앙박물관 바깥 풍경
아트샵까지 제대로 보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너무 좋더라구요. 들어가기 전에는 살짝 덥더니, 금세 시원해졌습니다. 곧 겨울이 금방 올 것 같아서 살짝 아쉽기도 하네요.
이대로 가기는 아쉬워서 날씨도 좋고 하니, 박물관 주변을 둘러봤어요.
오랫동안 박물관을 주기적으로 왔었는데, 최근에서야 이곳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요.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가득 보여서 무척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쪽으로 내려가봤는데, 나가는 입구가 반대편이라 어차피 다시 돌아나와야 되더라구요. 가운데 공간이 막혀있어서 조금 아쉬운...!
마지막으로 돌아나와서 연못을 바라보고 갑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늘 봐도 알차서 좋네요. 특히나 이번 전시는 전혀 몰랐던 유럽의 세계사를 약간이나마 배운 듯한 느낌이라 유익했습니다. 마치 막막한 세계사 지식의 안개가 살짝 걷힌 느낌이랄까.
하지만 역시나 남의 나라 역사인지라 완전히 이해를 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회화뿐만 아니라 갑옷에 다양한 공예품 등 전시물이 다양한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좋았던 점은 앉을 수 있는 곳을 적절히 많이 배치해놓아서 사람들이 많아서 대기가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전시 초반이라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아마도 조금 시간이 흐르면 한가해지는 시간도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보다 알찼던 전시.
오스트리아가 이렇게 강대국였던 시절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며, 혹여 유럽 역사나 유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이번 전시 꼭 놓치지 말고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2023년 3월 1일까지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라 시간적 여유는 충분해서 다행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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