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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소설 읽기 버킷리스트를 하면서 마지막 책으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는데요. 저자 매트 헤이그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덜컥 집어들었습니다. 전작과 비슷한 느낌의 표지에 못다한 이야기라는 부제 때문에 소설의 속편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에세이더라구요. 바로 <위로의 책>이라는 에세이입니다.
위로의 책 소개
처음에는 예상과 다르게 속편이 아니라서 살짝 실망했는데요. 워낙 전에 읽은 소설이 너무 좋았던터라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위로나 희망을 담은 에세이의 글들이 뭔가 뻔하기도 하고 그렇게 와 닿지 않아서 잘 읽는 편은 아닌데요. 이 책은 가벼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내용이 와 닿는 부분이 많아서 매일 조금씩 찬찬히 읽으며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라구요. 때문에 단번에 읽기 보다는 하루에 조금씩 명언을 얻듯이 읽는 편이 훨씬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소개
저자인 매트 헤이그는 영국 요크셔 출신의 동화작가 겸 소설가인데요. 소설에서도 작가 소개에 나와있지만, 20대 초반 갑작스러운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의 정신적 위기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자신의 병을 깨닫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게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회복 후에도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우울과 끊임없이 싸워가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이렇게 책도 쓰게 되고 전업작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그에게 글이 어둠속에 잠식해있던 그를 꺼내준 셈인 것이죠.
2022년에 출간된 <위로의 책>은 힘든 시기를 보내며 작가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들과 위안이 되어주는 글들을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글이지만 이렇게 완성된 책이 읽는 이들에게도 꼭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책으로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작은 희망보다 강한 것은 없다
작가 스스로 위안이 되어주었던 글귀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익숙한 내용의 문장들이 많았는데요. 그 문장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덧입혀져서 한층 더 와 닿는 글이 된 듯 합니다.
미로를 한번에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길을 잃었을 때와 같은 길을 따라가면 절대 미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길로 가야만 미로를 탈출할 수 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에 감사하자. 막다른 길은 미로를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몇 번 잘못된 길을 가보면 결국 어느 길이 맞는지 알 수 있다.
두려움은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리고 열려 있으며 자유롭다. 삶의 미로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불확실함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불확실함은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희망의 샘일 수도 있다. 기대했던 만큼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려워했던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위안을 계속 얻고 싶다면 불확실함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거기에는 정말로 위안이 있다. 모든 일은 불확실할 뿐이지, 결코 닫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 속에서, 무한 속에서, 답이 없는 세상에서, 인생 자체에 대한 열린 질문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게 순조로울 때는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하려면 변해야 하고 성장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어려운 시기를 만나면 성장한다. 배우려면 실패해야 한다.
글 속에서 종종 반복되어 나오는 문장이 있는데요. '포기하지 않는 작은 희망보다 강한 것은 없다.'라는 말이 반복되어 쓰여 있는 느낌이 왠지 작가가 스스로에게 계속 읖조렸던 글귀이지 않을까 추측해보게 만들더라구요. 어찌 보면 굉장히 뻔한 말 같기도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 이제는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되뇌다 보면 다시 한 번 힘을 낼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
그 외에도 반복적으로 담겨 있는 메세지가 있었는데요. 작가는 서구권에서 흔히 말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몸매를 멋지게 가꾸고 나를 업그레이드하라는 자기역량 강화 개념은 오히려 현재로선 충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수용과 연민인 것이죠.
희망은 행복이 아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 꼭 행복할 필요는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지금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형태의 희망이다. 숲에서 갑자기 길을 잃어도 숲에는 지나갈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계획과 약간의 결단력이다.
"남들이 잘못을 인정해야만 당신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묘지에 누울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안에 증오를 간직하고 있으면 누구도 아닌 자신을 벌하는 것밖에 안 된다.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다. 당신의 자존감은 타인의 마음속에서 찾을 수 없다.
경험은 내가 아니다. 허리케인 앞에 서 있을 때 허리케인이 얼마나 거대하고 무서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허리케인은 내가 아니다. 우리의 안과 밖의 날씨는 항상 똑같지 않다. 먹구름이 나를 덮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먹구름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하늘이다. 구름을 품은 하늘. 먹구름은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일 뿐,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다.
굳이 현재를 도망칠 필요없고, 아무것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고 충분하다고 말이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화려한 남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SNS나 온라인 세계를 볼 때 우리가 쉽게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어찌보면 남들과 나의 삶의 비교에서 오는 듯 합니다.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급격히 우울해지고 슬퍼지죠. 때문에 오롯이 나만의 삶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을 없앨 수 있는 호기심과 열정
저자는 농담이 아님을 강조하며 한 때 <왕좌의 게임> 시리즈에 빠진 덕분에 잠시나마 불안을 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데요. 실로 이 부분에서는 엄청 공감이 들더라구요. 대단한 작곡이나 창작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소소한 열정을 찾아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불안을 잊을 수 있습니다.
호기심과 열정은 불안의 적이다. 깊은 불안에 빠져 있을때 뭔가 관심 가는 것이 생기면 그것이 당신을 우울증에서 끌어내 줄 수 있다. 음악, 미술 영화, 자연, 대화, 글 뭐든 될 수 있다. 두려움만큼 큰 열정을 찾아라.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세상과 통해야 한다.
우리는 밤하늘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무리 구름 한 점 없이 별빛만 환한 밤이라도 감상적인 경이로움에 젖어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잘 없다. 그러나 흔치 않으면 경이로워진다. 이 지구, 우주에는 경이로운 것들이 넘쳐나지만 너무 많아 어느새 우리는 무감각해져 버렸다. 보통 심각한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사실이 분명하게 보인다. 철학자 앨런 와츠의 말처럼 우리는 그럴 때만 "우주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카메라 조리개"가 돼 세상을 바라본다.
물론 안에 있으면 편하다.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밖에도 편안함이 있다. 밖은 자유롭다. 밖에서는 자기만의 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 움직일 수 있다. 나만의 자리를 스스로 정하고 거기 머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게 <왕좌의 게임>같은 드라마 보기라고 할 지라도요. 건강한 취미에 몰입하고 열정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시즌, 다음 편을 보고싶은 갈망에라도 삶을 지속할 여지가 생기니까요.
어둠을 견더본 이가 건네는 찐위로
상투적인 흔한 힐링 책과 달리 이 책은 작가의 실경험담이 글귀에 가득 묻어나서 더욱 와 닿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기쁘고 평화로울 때보다는 오히려 정말 힘들고 위로가 필요할 때 읽으면 마음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다스리는 데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도 저자가 고백 형식으로 말하지만, 실제 우울증을 겪어본 이들이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비교적 정신관련 질병이 콘텐츠를 통해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어지고 익숙해지는 점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이 가볍게 남용되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긴 하더라구요.
현재 나의 우울증은 많이 회복됐지만 그 문은 절대 완전히 닫히지 않고 항상 약간 열려 있다. 가끔 유령처럼 가까이에 있는 게 느껴진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 나느 뭐든 둘 중 하나라는 어두운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믿음은 무척 위험하다. 조금이나마 우울감이 느껴지면 다시 아팠던 시절로 돌아갈 거란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건강, 특히 정신건강은 애매모호한 점이 많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 게다가 정신건강은 한번에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정원을 가꾸듯 살아있는 한 계속 돌봐야 하는 것이다. 나쁜 감정과 기억이 또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해지지만 돌아오더라도 그 순간적이고 변화무쌍한 본질을 알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흐름을 거스르면 저항을 계속 만난다. 하지만 생각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불확실하지만 자유로운 강이 만들어진다.
흔히 우울증을 쉽게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신쪽의 감기로 표현되곤 하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감기처럼 쉽게 약이나 주사로 고쳐지는 가벼운 질병으로 생각되는 것에 살짝 걱정이 된다는 인터뷰를 보고 저 또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기처럼 가볍게 낳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스스로 벗어나기도 쉽지 않고 전문가의 삼당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굉장히 복합적인 치료가 필요하거든요.
▼ 힐링되는 도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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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 한권으로 이러한 우울증에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무리지만, 적어도 정말 위로가 필요할 때 나와 같은 감정적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귀는 1~2쪽 내외로 쓰여있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가볍게 읽기에도 너무 좋은 책이라 혹여 위로와 감정적 공감을 얻고 싶으신 분들께 한 번 쯤 읽어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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