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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일찍이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해놨던 한국근현대미술전이 소마미술관에서 드디어 열려 서둘러 다녀왔습니다. 작년 가을 뒤뷔페 전 이후로는 오랜만인데요. 특히 이번 전시가 열리는 곳은 본관이라 더욱 오랜만에 가는 것 같아 무척 설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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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미술전 전시 소개

이번 전시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35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되었다고 하는데요. 아픔과 굴곡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서구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1920년대부터 문화적 대변환의 계기가 된 1988년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활약했던 25인의 작가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소마미술관-전경1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

기간 : 2023.04.06 - 2023.08.27
장소 : 소마미술관 1관 1- 5 전시실
날짜 : 화-일 10:00 - 19:00 (문화가 있는 날은 오후 9시까지)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가격 : 성인 15,000원, 청소년 & 어린이 9,000원, 특별권&무료권 사이트 참조
사이트 : https://soma.kspo.or.kr/

소마미술관-전경2

이전에 관람했던 뒤뷔페 전은 2관으로 지하철에서 바로 이어져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가 열리는 1관의 경우에는 2관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와 밖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본관 건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오랜만에 가는 거라 살짝 헷갈렸는데, 다행히도 직원분께서 친절히 알려주시더라구요. 

소마미술관-전경3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평일 오후무렵이라 그런지 대기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티켓팅과 사진도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도슨트가 이제 막 시작해서 다들 그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란 걸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네요. 

소마미술관-전시관-입구

도슨트가 시작된지 20분 정도 지난 시점이라 초반부분을 못 들어 살짝 아쉬웠지만, 몇몇의 유명한 작가들 외에는 정보가 없었던 터라 부랴부랴 도슨트에 합류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역시나 전시를 보기 전에 도슨트를 듣고 나니 확연히 그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좋더라구요.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 힘들긴 하지만 도슨트는 가급적 꼭 들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쉽게도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고, 매주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만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이렇게 3차례 운영된다고 하니 혹시 듣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셔서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도슨트가 아니더라도 3,000원에 가이드온 앱을 통해 오디오 가이드를 구매할 수 있으니 이점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 우리땅, 민족의 노래

전시는 총 5가지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요. 첫번째 섹션에서는 일제 강점과 해방 그리고 이어진 6·25 전쟁의 격동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표현된 한민족의 희로애락이 단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중섭, 박수근 외에도 장욱진, 이인성, 구본웅, 박생광 화백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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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 근대미술가들은 우리 땅의 모습과 공기들을 풍경과 인물로 즐겨 표현했는데요. 그들이 그리는 풍경은 단순히 보이는 외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담아내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였는데요. 덕분에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눈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모두 훌륭하고 인상깊었지만, 각 섹션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과 작가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근 화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항상 손꼽히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맨 먼저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모두 겪으며 헌난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애정 어린 눈길로 노상과 장터의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들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밀레 같은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생전에는 화가로서 명성도 얻지 못하고 평생 가난과 싸우다 외롭게 세상을 떠난 그는 죽고 나서야 한국 대표 화가로 유명해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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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작가라 생전에도 꽤 잘 나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평생 무명으로 고통스럽게 지냈다는 것에 참 놀랍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시대적인 상황때문에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소박하면서도 토속적인 아름다운이 작품에 가득 담겨있는터라 사진보다 오히려 직접 봤을 때 그 진가가 더 느껴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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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번 전시에서는 채색 작품보다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이 바로 스케치본이였는데요. 박수근 화백의 기법 특유의 채색 때문에 오히려 완성본에서는 조형미가 엄청 두드러지지 않는데, 선만 있는 스케치에서는 그러한 조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흐르는 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선이 지금 봐도 굉장히 감각적이라고 느껴질만큼 말이죠.

 

 

 

이인성과 이중섭

이인성 화백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구에서 태어난 서양화가인데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보통학교를 졸업 후 진학하지 못하던 중 화가이자 정치가인 서동진으로부터 수채화 지도를 받고 그림에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후 도쿄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화풍을 시도하면서 천부적인 재능과 신선한 표현 감각으로 천재적인 화가로 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인성-작품

몇 가지의 작품들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1940년대 초반에 그린 이인성 화백의 해변이라는 그림이였는데요.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해변 그림이지만 실제 보면 정말 색감이 굉장히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였습니다. 그 옆에 사과를 그린 작품도 있는데, 확실히 그 당시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세련된 화풍이고, 색 조합이 조금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중섭-작품

그리고 이어서 이중섭 화백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에 그를 빼놓을 수 없죠. 비교적 최근 이건희 컬렉션 전과 제주 덕분에 그의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사실 너무 많이 본 황소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이 작품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작품 옆에는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편지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섹션으로 이동

소마미술관은 2관도 그렇지만 특히 1관의 경우 섹션이 방처럼 나뉘어져 있어서 옮겨다녀야 하는 특이한 구성을 지녔는데요. 물론 그 덕분에 중간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따사로운 바깥 풍경도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살짝 번거롭고 몰입이 깨지는 느낌이 들긴 하더라구요. 심지어 섹션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많다 보니 하마터면 2관을 놓치고 못 보고 갈 뻔했습니다. 다행히 도슨트를 먼저 들었던터라 마지막 섹션에 이르러셔야 깨달아 다행이였지만 말이죠.

전시장-2층
한국근현대미술-작가-연도

긴 통로 구간에는 이렇게 큰 연대표가 붙여 있더라구요.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의 연대기가 쭉 나열되어 있는데요. 대부분 암흑기인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도 중 까맣게 표시된 1900년부터 1930년대를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후 해방이 되긴 하지만 곧이어 전쟁과 분단 그리고 이어진 극심한 빈곤 등 참 어려운 시대 속에서 이렇게 그림을 남겼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하마터면 놓치고 못 볼 뻔했던 2번째 섹션은 해방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해 현재까지 70년간 남북 분단의 세월로 인해 사라질 뻔했던 월북작가와 제 3의 한국인 해외 한인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배운성, 이쾌대, 변월룡, 황용엽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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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교적 근래까지만 해도 월북작가의 작품은 국내에서 언급되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왔다는데요. 분단된지 벌써 70년이 훌쩍 넘은 현재에는 민족의 미술사적 가치로 월북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빠른 시일내에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섹션을 특별하게 구성했다고 하네요.

 

 

 

이쾌대와 변월룡

이쾌대 작가는 한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서양과 동양의 기법을 혼합하여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리얼하게 담은 것으로 굉장히 유명한데요. 주로 인물화를 많이 그려온 작가의 작품에서는 당시 시대의 강렬한 서사적 메세지가 굉장히 생생하게 담겨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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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40년대 말에 그린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보면 한국적인 풍경과 의상 위에 쓰고 있는 근대식 모자에서 당시 근대 문물이 들어오며 혼재되고 있는 상황임을 은연중 느낄 수 있죠. 도슨트 설명 시 들어보니 현재 이 작품은 개인소장으로 원래는 보기 힘든데 다행히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게 되어 많은 미술팬들의 기대감을 안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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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쾌대 작가의 작품은 하마터면 국내에서 보지 못할 뻔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월북했다는 이유 때문에 월북작가로 찍혀 국내에 언급조차 금기시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행히 서울올림픽 이후 월북작가들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이쾌대 작가 또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던 이쾌대지만, 식민지와 광복,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과 가족과의 이별 거기다 정치적인 인데올로기에 이용되어 월북까지 하게되는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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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옆에 엄청난 스케일에 광복 후 사람들의 환희와 죽은이에 대한 애도가 담긴 대형화가 있었는데요. 향토적이면서도 서양 대형화 못지 않음 생생함과 리얼함 디테일이 가득해서 실로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 미술사에서 아주 귀중한 이 작품들을 하마터면 못볼 뻔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하루빨리 재조명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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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변월룡 화백이 그린 평양의 모습인데요. 가까이에 있지만 가볼 수 없는 곳이라서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선진국에서 좋은 재료를 빌려 올지라도 그림에서 민족혼은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던 그는 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의 거장인데요.

 

과거 유학 시절 고려인 강제 이주정책으로 가족들은 모두 우주베키스탄으로 이주당하게 되고, 그는 러시아에 홀로 남아 계속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소련의 명령으로 북한에 파견되어 북한 미술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북한의 귀화를 거부해 결국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소련에서 미술활동을 이어갔다가 한국에서 몇 차례 전시회가 추진되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매번 무산되다가 2016년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선보이며 잃어버린 천재화가로 재종명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3번째 섹션은 한국의 여성 미술사를 한 자리에서 조명할 수 있었는데요. 서양에서도 여성 화가들이 크게 활약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봉건적이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던 한국에서도 더욱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근대미술을 여성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한 전시가 아직까지도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당시 여성미술은 그 존재 자체로도 급진적이며 선구적이고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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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섹션에서 소개되는 나혜석, 이성자, 방혜자, 최욱경, 천경자, 박래현 화백 보두 결혼, 육아, 가사와 더불어 사회적 편견에 맞써 고난과 굴곡의 세월 속에서 험난한 해외 유학의 길을 걸으며 예술 활동을 펼쳤는데요. 국내외 할 것 없이 남성 중심의 주류 미술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는 전시는 늘상 반가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더 많이 여성 작가들이 재조명되고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천경자

한국 근대 여성 작가 중에 단연코 항상 나올만큼 유명한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을 먼저 볼 수 있었는데요. 이건희 컬렉션 전에서 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더 많은 수의 큰 규모의 그림들을 볼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실 천경자 화백의 인물화를 떠올리면 특유의 두드러지는 강렬한 눈매와 선명한 색체가 떠오르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화와 정물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채색된 물감에 은은하게 반짝임이 있어서 더욱 눈길을 땔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움이 느껴지더라구요. 계속 보고싶은 마음에 한참을 들여다봤던 구간이였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고등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운 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찍히 그 재능을 인정받았는데요.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벗어나 굉장히 대담하고 밝은 색채를 사용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고, 생전 수필집도 많이 집필하여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매력적인 환상적인 세계관이 그녀만의 고유의 스타일로 인식되게 되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인해 잠시 동안 절필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화가 본인이 직접 그리지 않았도 했는데도 불구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굉장히 긴 싸움이 이어졌던 사건이였죠. 그럼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경자 화백은 이후 다시 작품활동을 이어서 했고, 가지고 있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시대에 활동했던 그녀는 상당히 개방적인 여성이였는데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그 시절에 세계일주를 하였고, 굉장한 애연가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항상 꽃과 여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요.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속에서는 그녀가 주로 사용했던 소재가 이국적인 배경에 담겨 더욱 인상깊었던 것 같습니다.

 

 

 

나혜석과 박래헌

작은 캔버스에 단 4점의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나혜석 화백은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인데요.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신여성으로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이자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오빠를 따라 일본에 가 유화를 공부했으며, 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맞서 여성의 권위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추후 결혼 후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그에 대한 경험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한 글을 써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화가로서 기법에 한계를 느낀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세계여행을 하던 중 파리에서 만난 천도교 지도자 최린에게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기혼자였기 때문에 국내 예술계에서 큰 비난을 얻게 되고 결국 나혜석은 이혼을 하게 되고 자녀 또한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도슨트님도 말했듯 어찌되었든 불륜은 옹호되지 못할 일이지만, 둘 다 기혼자였던 사실을 두고 보면 오직 여성인 나혜석에게만 사회적 비난이 쏠린 듯하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굉장히 세상사에 눈을 뜬 신여성으로 꾸준히 남녀의 불평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러한 파란만장한 삶과 달리 그녀의 몇 점의 작품들은 굉장히 평화로운 풍경들을 잔잔하게 담고 있는데요.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답게 그녀의 출중한 실력을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전시가 열렸을 당시 엄청 많은 방문객이 찾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더 빛을 발하지 못한 점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고 또 눈에 띄었던 작품으로는 바로 박래헌 화백의 그림이였는데요. 제목이 무제였던가 했는데 꼭 엄청나게 켜켜이 쌓인 나무의 나이테같은 모양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면 저 하얀 부분이 은은하게 펄감이 돌아서 더욱 멋집니다. 그녀는 김기창 화백의 부인으로 부부 모두 화가인데요. 청각 장애를 지닌 남편을 위해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구화를 하기도 했으며, 한국화에서 일본화, 모더니즘, 추상, 판화 기법 등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굉장히 앞선 기법들을 해내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끌어 왔다고 합니다.

 

 

 

이성자

이건희 컬렉션 덕분에 알게 된 이성자 화백의 작품도 있었는데요. 그녀는 이혼 후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이 나라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홀연히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요. 당시 보통 일본으로 가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던 이들이 많았던 반면 이성자의 파리 횡보는 굉장히 독특한 이력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가게된 낯선 파리에서의 생활을 굉장히 녹록치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아이들이 그립고 보고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마음을 붓 한 점에 실어 작품을 그리는데 더욱 매진했다고 합니다. 김환기 화백 또한 타국에서 보고픈 이들을 그리는 마음을 한 점마다 담아 그려냈던 것을 보면 타국 생활이 뜻깊은 영향을 주지만 그만큼 큰 외로움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서 보면 더 진가가 느껴지는데요. 정성스럽게 차곡차곡 얹혀진 무수히 많은 붓질이 그러한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추후 성인이 되어 재회한 아들들은 엄마의 이러한 사정과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진주에는 이성자미술관이 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진주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미술관을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4.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4번째 섹션은 인물과 풍경화에 이어 추상의 세계로 이어지는데요. 유럽과 미국이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듯 한국 근대미술 또한 이러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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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민족화 한국적인 조형미에서 세계화의 흐름으로 나아가게 된 것인데, 한국의 추상미술은 특히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자 전통과 현재의 융합이라는 소재적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독특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최근 더욱 핫해진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추상화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김환기 화백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김환기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원래도 유명했지만 이건희 컬렉션 덕분에 더욱 핫해진 듯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풍경 요소인 산과 하늘, 달, 구름 그리고 달항아리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추상적으로 점과 선, 면으로 나타내는 화풍을 발전시켜나갔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완전히 추상으로 가기 전 초창기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이전에 보았던 작품들과 달리 좀 더 색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은 이러한 스타일을 반추상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구요. 그의 대표작 중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점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여진 그림들은 아직 추상으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에 그려진 것이라 어느 정도 형태와 사물을 알아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품속에서는 항상 동그란 달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죠. 특히 백자를 굉장히 좋아해서 엄청나게 수집을 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가장 좋아했던 달항아리라는 명칭도 김환기 화백 덕분에 붙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특별했던 점은 바로 이 김환기 화백의 유화그림 모두 개인소장이였다는 점인데요. 개인이 소장한 작품이라 쉽게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데, 이렇게 한 자리에 만나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합니다. 

 

 

 

유영국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미처 이름을 몰랐던 유영국 화백을 이번 전시 덕분에 톡톡히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한국 추상 미술의 1세대 화가로 유명한 김환기 화백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굉장히 뜻깊은 화가라는 점을 말이죠.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산을 그리다 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아서 내 그림의 산 속에는 여러 모양의 인생이 숨어 있다. 단순화는 복합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좋아하는 산을 모티브로 선, 면 그리고 강렬한 색체 대비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 평생 자연을 탐구한 화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거대하고 숭고한 자연의 모습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응축시킨 그의 작품은 간단한 조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굉장한 자연의 압도감이 한 발 가까이 와 닿는 느낌입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직 현재 유영국미술관은 없는데요.  유족은 아버지는 분명 부자가 아닌 모든 이들이 보길 바랄 것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개인 미술관이 생기면 작품을 전부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는 개인 미술관이 생겨도 충분한 이력의 화가라 개인미술관이 생겨서, 많은 이들이 관람하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드디어 마지막 섹션에 도착했습니다. 5섹션은 독특하게도 이어진 복도를 따라 계단을 내려온 1층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전 섹션들의 회화들과 달리 유일하게 조각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도 하고 엄청 관심있는 편은 아니여서 가장 빠르게 본 구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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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워낙 재료, 공간, 시간이 드는 조각 예술은 예술가의 순수한 예술로 표현되기 보다는 주문 제작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열악환 환경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여러 모로 제약이 커서 전시가 되기도 쉽지 않지만, 이번 전시 덕분에 한 자리에서 많은 근현대조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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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전시장 외에도 바깥 공간과 서울올림픽공원 야외조각까지도 이어지는 연결점이 참 인상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도슨트를 통해 알게 된 한가지 재미난 점은 이 섹션에서 방탄소년단의 RM이 개인소장품인 작품 한 점도 있는데요. 평소 예술에 관심이 많은 그는 최근 들어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도 한 점 대여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대여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도슨트를 통해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트샵

다소 혼란스러웠던 전시를 꼼꼼히 둘러보고 5섹션의 끝에서 바로 이어지는 아트샵으로 나왔는데요. 특별하게 사진 않지만 항상 기대하게되는 아트샵인데, 이번 전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전시 자체는 굉장히 인상적이였는데, 그에 비해 굿즈 구성은 뭔가 핵심이 빠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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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샵2
아트샵3

사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터라 혹시 엽서가 있으면 구매할까 했는데, 천경자 외에도 꽤 많은 수의 유명한 작품들이 다 빠져있어서 아쉬웠어요. 그동안 봤던 서양 전시에서 정말 몇 십까지의 엽서가 많았던 것을 보면 참 아쉬울 따름인데요. 물론 엽서가 너무 남아돌면 전시관의 손해로 남겠지만, 그래도 가짓수나 종류가 다소 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구요.

아트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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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들도 뭔가 기본적인 것은 있는데 새로운 것이 없달까. 그림도 거의 이중섭 화가의 작품인데, 이번 전시와 무관한 작품도 있어서 어디서 얻어온 건가 싶기도 했다는. 굉장히 매력적인 근대작가의 작품이 많았던 전시였어서 더욱 아쉬운 아트샵 굿즈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가와 작품들을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전시

우리나라 근현대 화가들의 정보도 거의 모른 채 얼리버드만 보고 덜컥 예매해버린 전시였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정보들을 배워갈 수 있는 뜻깊은 전시였던 듯 합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인해 인지된 한국 작가들을 더 깊게 알게 된 느낌이랄까요. 사실 그동안은 서양 근대 미술작품에만 푹 빠져있었던터라 국내에 유명한 작품도 화가도 잘 몰랐는데, 이번 전시 덕분에 유럽 못지 않게 우리나라에도 대단한 작가들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올림픽공원1

단순히 작가들에 대해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관심도 많이 생겨서 유명한 근현대 화가의 개별 미술관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펴져있다보니 빠른 시일내에 다 돌긴 무리겠지만, 천천히 차근차근 기회가 될 때마다 한 번 가봐야겠다는 다짐이 드네요.

올림픽공원2
올림픽공원4

세계 유명 전시가 아니라서 관람객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근현대미술사에 관심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는데요. 특이한 점은 다른 전시들보다 연령대가 평균적으로 더 높은 느낌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전시장 특성상 이래저래 이동을 해야하는 복잡한 동선과 많은 사람들로 인해 다소 몰입감이 깨지는 것은 살짝 아쉬웠지만 우리나라 근현대 작품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번쯤 가볼만한 전시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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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올해 8월까지로 굉장히 전시 기간이 넉넉하게 남은 터라 시간이 나실 때 한 번 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올림픽공원도 있기 때문에 전시를 보고 주변도 가볍게 산책하기 너무 좋더라구요. 좋은 날씨에 맞춰 가보시기를 완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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