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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화제였던 책이 있었는데요. 바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 책이였어요.

 

 

읽기 전에는 제목에 '죽고싶다'는 표현이 들어가서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앞선 표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떡볶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그냥 가벼운 에세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울증과 관련한 무거운 주제의 책이였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소개

죽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책표지

출판년도 : 2018
출판사 : 혼
저자 : 백세희

 

이 책을 쓴 저자인 백세희 작가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는데요. 가정폭력과 가족간의 불화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7년이 되던 해에 다행히 잘 맞는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해 왔다고 하는데요.

 

이 책은 그 당시의 상담 기록을 녹취하여 글로 다시 엮은 일종의 상담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목에 떡볶이가 들어간 이유는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떡볶이기 때문인데요. 죽고 싶을만큼 힘든 정신질환과 힘겹게 싸우면서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마음처럼 잘 살아내고 싶은 작가의 희망이 함축적으로 담긴 제목인 것 같아 오히려 책을 읽고 나니 더욱 달리 보이는 듯 합니다.

 

 

 

현시대에 쉽게 느낄 수 있는 불안과 우울증

이 책을 통해 기분부전장애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는데요. 최근 들어 정신과나 질환에 대한 편견들이 많이 사라지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같이 자주 쓰이는 정신질환적 용어에는 많이 익숙해졌는데요. 기분부전장애라는 용어는 책에서 처음 보는 것 같더라구요. 용어가 어려울 뿐 쉽게 풀이하자면 경도의 우울증이라고 하더라구요.

 

 

사실상 우울증의 한 범주에 들어갈텐데 아주 심하게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항상 물 흐르듯 기전에 깔려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평소에는 괜찮다가 불현듯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급우울해지는 증상이 생기는 거 말이죠. 사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SNS을 통해 쉽게 남들과 비교가 되어버리는 현시대에서 저자와 같은 정신적 질환을 정말 누구나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매체에서 다뤄지는 깊은 우울증보다 오히려 이러한 경도 우울증이 더욱 대중들에게 만연해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그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개인의 상담기록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든 일부 지점에서 공감대를 느끼게 할 요인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승희 작가의 자살 일기 중 자유 죽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으로 단어를 바꾸는 것처럼 자살을 자유 죽음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 어감, 인상이 매우 부정적인 단어가 많이 있지. 낙태, 폐경, 자살 등등.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난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남은 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면 기꺼이 그 삶을 끝낼 자유도 존중해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에게는 애도가 너무 부족하다. 죽은 자에 대한 존중도, 자유 죽음을 택한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실패했거나 포기한 낙오자로 여기는 사람들. 정말 끝까지 살아내느 게 이기는 걸까? 애초에 삶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을까.

 

 

 

 

쉽지 않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책 속에서 저자는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면서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과 왜 그런지를 담담하게 언급합니다. 매 상담 때마다 같은 상황에 빠져버리고 또 다시 되돌아가는 상태에 낙담을 하곤 하지만,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조금씩 차근차근 나아질 방법을 생각해내죠. 물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미비했고 느려서 간혹 깊은 슬럼프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2권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안 좋은 행동을 하기도 하죠. 사실 읽으면서 정말 반복된 말을 계속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왠지 스스로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공감이 무척 많이 되었습니다. 저자 또한 상담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왜 자꾸 같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지 무척 답답해하죠. 스스로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에 무척 괴로워합니다.

 

사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 부분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비뚤어진 자존감, 남과의 비교, 과도하게 의식하는 남들에 대한 시선, 부정적이고 엄격한 자기 검열 등 리얼하고 변화무쌍한 저자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표현될 때 마다 왠지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내 감정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도록 평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 자신을 책망하고 자책하는 일은 너무 쉽게 이루어지죠. 

 

오직 나를 향한 '좋게좋게'와 오직 나를 향한 싸움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동기와 시도가 나에게로 집중되는 게 얼마나 복잡한 피곤함을 가져다주는지. 시선을 옮기자. 나에서 타인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다수에서 소수로. 쓸모 있지만 나를 녹슬게 하는 것들에서 비록 무용하더라도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들로.

시선을 옮기면 삶의 구석을 엿볼 수 있다. 시선은 행동을 이끈다. 행동은 삶을 변화시킨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변할 수 는 없다는 것. 나는 변하게 하는 건 내 시선이 닿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삶의 구멍은 수없이 깨닫는 것들로 채워진다는 걸 배운다.

 

 

 

 

현실적이여서 더 와 닿았던 마무리

책은 결론을 내지 않습니다. 마치 소설처럼 말미에 극적으로 모두 다 나았습니다 라는 엔딩이 아니여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였던 것 같아요. 사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온전히 없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심지어 우리의 감정은 더욱 내 맘대로 바꾸기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조금은 희망적인 것은 2권에 걸쳐진 긴 상담기록을 읽으면서 변할 것 같지 않고 똑같이 반복되던 저자의 말이 조금씩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말미에는 이전보다는 덜 우울증을 느끼게 되었고, 남들과의 비교와 부정적인 생각도 최대한 덜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현재 우울한 감정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죠.

 

물론 여전히 가끔은 굉장히 우울해지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 모든 날이 다 행복할 수는 없으며, 우울한 날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더 이상 과거처럼 우울의 감정에 완전 푹 빠져들진 않습니다. 비록 오늘은 그런날이라 하더라도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죠.

 

빛과 어둠은 한 몸이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행복과 불행의 공존처럼 삶의 곡선은 유동적이다. 그리고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이어가며 웃고 울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질문도 답도 아닌 바람으로 끝난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다. 싫다보다 좋다는 단어가 많은 삶을 살고 싶다. 실패를 쌓고 더 좋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 감정의 파동을 삶의 리듬으로 여기며 즐기고 싶다. 커다란 어둠 속에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조각의 햇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쉽게 병원의 문턱을 넘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상담기록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물론 중간마다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첨부되어 있지만, 거의 대부분 상담기록을 읽는다고 볼수 있는데요. 그 때문에 이 책이 화제와 동시에 그저 녹취된 상담록을 쓴 것이라 창작물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하는 약간의 비판도 얻은 이력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자체가 훌륭한 책을 만들어 유명해지려는 마음보다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울증이나 여러 심리를 다룬 책들, 그리고 위로에 대한 책들이 정말 많이 출간되었는데요.

 

자전적인 에세이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일종의 쉽지 않은 자신의 리얼한 사연과 감정이 담긴 병원상담기록을 내보인 것이라 이 또한 용기였던 듯 합니다. 보통 상담만 받으면 그냥 휘발되어버릴 기록들이 아예 책으로 꾹꾹 글자들이 눌러 담겨 평생 남겨지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죠.

 

때문에 이 책은 어찌보면 상담이 필요하지만 여러 가지 사유로 엄두가 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통해 어떻게 상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지 간접적으로 접해보게 되고, 더불어 조금은 상담을 받고 싶은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부디 책의 말미에 저자가 남긴 말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숨 쉬듯 당연하게 병원을 찾고, 그에 따른 불이익도 받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책이 나올 시점보다는 현재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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